경찰, 삼청동 시위대에 물대포 무차별 발사
[현장 13신: 1일 오전 8시]
남은 마지막 시위대 진압시작…흩어졌던 시민들은 시청앞으로
1일 아침 7시40분께 경찰은 종로구 안국빌딩 앞 삼거리에서 모여 있던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기 시작했다. 방패를 든 경찰들은 시위대와 떨어져 있던 100여m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며, 4~5열로 대형을 이뤄 시위대를 덮쳤다. 분말 소화기를 뿌리며 달려드는 갑작스런 경찰의 급습에 당황한 시위대는 계속 뒤로 밀려나며 흩어졌다.
경찰은 시위대에서 떨어져 나온 시민들을 보이는 대로 연행하기 시작했다. 두 명의 경찰에게 끌려가던 한 20대 시민은 “대통령과 대화하고 싶다”며 울부짖기도 했다. 시위대 앞에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데 앞장섰던 예비군복 차림의 시민 두 명도 경찰에 의해 봉고차로 끌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시위대는 경찰에 밀려 종로 낙원상가와 운현궁 주변 골목 등으로 흩어졌다. 많은 시민은 다시 시청앞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에 앞서 시위대 1만여 명은 청와대로 통하는 주요 진입로에 모여 있다가 진압을 시작한 경찰에 밀려 정부종합청사-경복궁 샛길, 안국동까지 후퇴한 뒤, 새벽 6시께부터 안국삼거리 부근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6시55분께 종로경찰서 정보과장이 나와 청계광장으로 이동하면 길을 열어 주겠다고 밝혔으나, 시위대는 이를 거부했다. 7시20분께 경찰은 협상을 할 테니 대표자를 뽑아달라고 방송하자, 시위대 선두에 있던 30여 명 시민은 논의를 벌였다. 자리를 지키며 연좌시위를 계속하는 방안, 2차선 도로만 점거하고 차량을 통행시키는 방안 등을 논의했으나 역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시위대는 결국 몇 분 뒤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펴놓고 “우리 모두가 대표다”라고 외쳤고, 몇 분 뒤 경찰의 진압이 시작됐다.
경찰 방패 사이에 팔이 끼어 크게 다친 변형석(29·종로 56가동)는 “요즘 시대에 이런 무자비한 폭력을 봐야 한다니 슬프다”며 “마음이 너무 무겁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인현(31·인천 연수동)씨는 “평화적인 시위를 물대포와 방패로 마구 진압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우리가 그동안 이런 나라에 살고 있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장 12신: 1일 오전 5시30분]
광화문까지 다시 밀려…참가자들 계속 늘어
아침 5시30분께 현재 경찰과 7천여 명의 시민들은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와 경복궁 사이 10차선 도로에서 대치하며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살수차를 동원해 간헐적으로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으며, 해산을 종용하는 방송도 계속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날이 밝아오면서 오히려 새로 시위대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새벽 4시20분께부터 청와대 주요 진입로에서 경찰의 시위대 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경찰은 시위대와 대치중이던 자하문길, 효자로 등에서 일제히 물대포를 쏜 뒤 뒤이어 방패를 든 경찰을 투입해 밀고 내려오는 방법을 사용했다.
경찰들은 방패를 휘두르며 시민들을 위협했고, 이 과정에서 10여 명의 시민들이 방패에 맞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왼쪽 발목에 붕대가 감긴 20대 시민은 도로 위에 쓰러져 정신을 잃자 여러 시민이 급히 달려들어 부축해 빠져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시위대 선두는 예비군복을 입은 시민들이 나서 경찰에 밀려 뒤로 밀려나는 시민들을 보호하기도 했다.
삼청동 앞길(동십자각 사거리)에서는 아침 5시30분 현재 경찰과 시민 4천여 명이 대치 중이며, 참여 시민들의 수가 계속 늘고 있다. 경찰과 시위대의 몸싸움 과정에서 3~4명의 시민이 부상을 당해 병원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강진원(28·서울 이문동)씨는 “물을 맞아 많은 시민이 추위에 떨고 있어 날이 빨리 밝았으면 좋겠다”며 “그러나 날이 밝아도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현장 11신: 1일 오전 4시]
부축하는 시민에게도 물대포…공방 더욱 치열
새벽 4시께 삼청동길 입구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은 경찰 버스를 밧줄로 둘러싼 뒤 여러 명이 함께 당기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영차, 영차”, “비폭력”을 외치며 길을 가로막고 있던 버스를 치워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경찰은 다시 크레인을 동원해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물대포에 맞은 시민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여기저기 나뒹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의료봉사단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넘어진 시민들을 부축해 끌어내려고 하자, 그들을 향해 다시 물대포 공격이 계속 되는 등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경찰차의 철망을 모두 뜯어낸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버스 위로 올라가면 다시 물대포 공격이 이어지고, 다시 경찰들이 올라오는 것이 반복되는 등 버스 위에서의 공방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효자로 입구에서도 새벽 2시50분께부터 경찰의 물대포 공격이 10여 분 간격으로 계속 이어졌다.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비옷과 우산, 비닐 등을 구해와 물에 맞아 떨고 있는 시민들께 건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앞서 오전 2시께 시민 대여섯 명이 경찰 버스 위로 올라가자, 경찰 10여 명이 따라 올라와 두 명을 연행해 갔다. 이 과정에서 몇몇 시민들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버스 위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시위 현장에 있던 문병철(25·경기 안양시)씨는 “꼭 청와대로 가자는 게 아니다”며 “이 정도면 대통령이든 누구든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가 나와서 시민들과 대화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물에 흠뻑 젖어 추위에 몸을 떨던 이미향(46·서울 강남구 반포동)씨는 “이렇게 목이 터져라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게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용(43· 경기 부평시)씨는 “4·19혁명 이후 처음 시위대가 청와대 앞길까지 온 것만 해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말해주는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중대결심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서울 효자로에서도 물대포 난사
[현장 10신: 1일 오전 3시]
경찰, 물대포 ‘난사’…시민들 저항 계속
2시가 넘어서면서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는 소강 상태에 접어드는 듯 했다. 경찰은 시민들을 연행하는 것을 중단했고, 시민들도 더 이상 버스를 흔들거나 올라가지 않았다.
2시25분. 경찰이 진압 경고 방송을 했다. “경고합니다. 지금 즉시 해산하십시오. 만약 해산하지 않으면 법에 따라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나 효자로 앞 2만여 명의 시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대열 뒤쪽에선 시민들을 종이 등을 모아 불을 피워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지친 시민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
2시35분. 한 시민이 전경에게 캔 커피를 나눠주었다. 전경은 꺼려하지 않고 받았다. 시민이 “우리가 너희들이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를 어깨를 다둑거렸다. 전경도 “우리도 시민들이 싫지 않아요”라고 대꾸했다.
2시40분. 시민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박수를 치면서 대한민국 만세 2번을 외쳤다.
2시50분. 경찰이 또 물대포를 쐈다. 이번엔 여러 대의 물대포가 한꺼번에 시위대 사방을 공격했다. 시민들은 10m가 넘는 비닐을 뒤짚어 쓰고, 우산 속으로 숨기도 했다.
그리고 구호를 외쳤다. “폭력경찰 물러가라” “이명박은 물러가라”
한 시민은 버스 위에 혼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며 외로운 저항을 했다. 물대포 3대가 그를 향해 물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잠시 뒤 경찰 5~6명이 버스 위 시민을 연행하려 하자 시민들이 그를 붙들어 구출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 뒤 시민 30여 명이 계속해서 버스에 올라 물대포에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아래 시민들은 “멈춰라, 멈춰라”를 연호하고 잇다.
물대포를 맞은 시민들은 새벽 찬공기에 오돌오돌 떨고 있다. 경찰은 새벽 찬공기에 물대포를 난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추위에 지쳐 해산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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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청와대로 향하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시위대가 서울 효자로에서 물대포를 쏘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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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9신: 1일 오전1시30분]
시민에 붙들린 전경 “미국 쇠고기가 뭔지…”
물대포가 뿌려지면서 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삼청동길과 효자동길 입구에선 경찰의 무차별 물대포 공격이 계속됐다.
6월1일 오전 1시30분께 삼청동길에서 경찰은 접근한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다시 발사했고, 이 과정에서 버스 위에 올라가 항의를 하던 한 시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에 앞서 오전 1시께 시민들은 도로를 가로막고 있던 경찰 버스들을 밀쳐 사이를 벌리면서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자 시민들과 대치하던 경찰은 버스 뒤쪽으로 물러섰고, 5~6m 정도 되는 두 버스 틈새에서 다시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두서너줄로 대열을 이룬 경찰은 방패로 시민들을 밀어내며 강력하게 버텼다. 힘 싸움이 30여분 쯤 지속되자 경찰은 다시 물대포를 발사했다. 시민들은 “멈춰라”, “비폭력“을 외쳤고, 이 사이에 한 시민이 경찰 버스위로 올라가 태극기를 흔들다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이 시민은 들것에 실려 시위대 사이를 빠져나갔다.
같은 시각 효자로에선 경찰이 시민을 연행하고, 시민은 경찰을 끌어와 무장해제 시켰다. 효자동에는 시민 1만여 명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시민들은 전경 버스 사이를 지키고 있던 경찰을 끌어냈다. 시민들은 인간 밧줄을 만들어 앞 사람이 전경을 붙들면 300~400명이 한꺼번에 끌어당겼다. 전경들은 시민들의 단결된 힘을 이기지 못했다. 전경들이 끌려나오자 시민들은 “비폭력, 비폭력”을 외쳤다. 전경들은 시위대 쪽에 와서 담배를 피우고, 다시 경찰 부대로 복귀했다.
시민에 붙들려온 한 전경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 놈의 미국 쇠고기가 뭔지…” 지켜보던 시민들이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오전 0시5분. 시민들이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시작과 끝이 맞지 않는 애국가는 마치 돌림 노래처럼 들렸다.
오전 0시40분. 시민들이 다시 버스를 밀기 시작했다. 경찰이 다시 물대포 공격을 시작했다. 시민들이 전경 버스 앞에 대형 태극기를 펼치고, 그 안으로 숨었다. 경찰이 태극기를 무차별 공격한다.
오전 0시50분. 시민 3명이 집시법 반대 피켓을 들고 버스 위에 올랐다. 전경들이 버스로 이들을 연행하려 하자 예비군복을 입은 남성들이 보호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박아무개(21)씨가 경찰에 잡혀 갔다. 박씨가 잡혀가자 친구 황아무개씨가 버스 위에 올라 무릎을 꿇었다. 황씨는 경찰을 향해 “내 친구를 내놔라”고 울부짖었다. 시민들은 “풀어줘 풀어줘”라고 외쳤다.
오전 1시30분. 분노한 시민들이 전경한테 빼앗은 방패로 버스 유리창을 깼다. 그리고 또 버스를 밀고 흔들었다. 이 순간 또 다시 물대포 공격이 시작되었다. 물대포 공격은 20분 동안 무차별적으로 이어졌다. 부상자가 속출했다. 탈진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시민들은 저 체온증으로 몸을 부들부들 떤다. 시민들과 의료자원봉사진은 탈진한 사람들에게 옷가지와 담요를 급하게 모아줬다.
시간이 갈수록 시위대의 숫자는 줄지 않고 양쪽은 더욱 거칠게 공격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쉴새없이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외쳤다. 최현준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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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청와대로 향하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시위대가 서울 동십자각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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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8신: 6월1일 오전 0시40분]
경찰, 효자로 이어 삼청동도 물대포 발사
1일 0시40분께. 서울 삼청동길 입구에서도 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쐈다. 밀집해 있던 시민들은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경찰의 물대포를 그대로 뒤집어썼다. 여성 시위대들은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경찰의 물대포 공격에 항의했다. 취재진도 물대포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현장을 생중계 하던 <한겨레> 취재영상팀도 물대포에 맞아 카메라와 노트북 등이 파손돼 현재 생방송은불가능한 상태다.
[현장 7신: 31일 오후 11시50분]
시위대-청와대 턱밑 대치…“이명박 나와라”
31일 11시50분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쐈다. 아이들도 있고, 여성들도 있는 현장은 일대 비명과 울음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11시35분. 효자로에 전경 버스 2대가 바리케이트르 치고 있다. 남성 2명이 전경 버스에 올라 구호를 외쳤다. 잠시 뒤 경찰도 버스에 올라 2명을 연행했다. 시민들이 물병을 던지며 항의했다.
버스 한쪽 코너에선 전경들이 막고 있는 통로를 시민들이 뚫으려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몸싸움 벌이던 시민들은 전경 끌어내기 작전으로 바꿔 10여명을 무장해제 시켰다. 시민들은 비폭력을 외치며 전경을 때리지 못하게 보호하고 시위대 뒤로 끌어냈다.
11시50분. 시민들이 2개의 사다리를 구해와 버스 위로 오르려고 시도했다. 경찰은 바로 물대포를 발사했다. 10분 동안 현장은 아이들의 울음소리, 여자들의 비명소리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온몸이 물에 젖은 시민들은 울먹이며 “이명박 나와라”를 외쳤다.
10시40분께 시민 4천여 명이 경찰과 대치한 삼청동길 입구에서는 경찰이 밀려드는 시민들을 향해 분말 소화기를 뿌리자 최루탄으로 착각한 시민들이 크게 흥분하는 등 한때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앞서 10시30분께 한 시민이 가로 3m, 세로 3m 쯤 되는 대형 태극기를 꺼내자, 근처에 있던 시민들이 모여들어 서로 나눠들고 애국가를 부르자 모든 시민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 아버지 역으로 출연했던 탤런트 맹봉학(63)씨는 “중학생들도 나오는데 어른으로서 방안에 있을 수 없어 이틀 째 나왔다”며 “많은 연애인들도 몸을 사리지 말고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현장6신:31일 오후9시50분]
‘5만 촛불’ 도심 곳곳 격렬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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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수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hyopd@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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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촛불 문화제를 마친 시위대는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위대가 경찰의 저지를 뚫고 청와대 턱밑까지 진출했다. 시민들은 전경 버스를 흔들거나 전경 버스 위에 올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소화기를 뿌렸다.
100여명이 대학생 결사대가 연행된 청운동사무소 앞은 여전히 긴장이 높다. 경찰 진압작전이 끝난 뒤 40여명의 시위대가 다시 동사무소 부근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경찰은 전경 버스 2대를 대기시키고, 진압 태세에 돌입했다.
가장 먼저 거리로 뛰쳐나온 3천여 명의 시위대는 서울역으로 갔다가 “청와대로 가자”는 의견에 따라 명동역으로 유턴했다. 시위대는 9시25분께 한국은행 4거리에 도착해 서울광장 쪽 시위대와 합류했다. 10시47분께 경찰은 밀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소화기를 뿌리기도 했다. 시민들은 급작스런 공격에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청운동 사무소 앞 시위대 연행
9시30분. 시위대 1만명은 청와대 방향으로 길을 잡아 안국빌딩 3거리에 도착했다. 경찰은 다가오는 시위대를 향해 철저하게 바리케이트를 치고 청와대 방향 진출을 막았다.
9시50분. 갑자기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전경 버스 위로 올라 경찰을 향해 절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김석천군은 “경찰도 같은 시민인데 사람들의 말을 안듣는 것을 보고 마음을 마음을 움직이려고 절을 하고 있다”며 “지성이면 감천이다. 경찰이 물러날 때까지 절을 하겠다”고 말했다. 잠시 뒤 경찰이 안국동 입구에서 삼청동으로 가는 길을 열어줬다.
일부 시민들은 사다리를 준비해 전경 버스 위로 올라 만세를 불렀다. 시민들은 사람들이 내려오자 전경 버스를 흔들고 있다. 지켜보던 시민들은 “차빼라” “힘내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응원하고 있다.
미 대사관 앞에는 3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밤샘 농성을 결의한 상태다. 이곳 시위대는 한총련 학생들이 가세하면서 프레스센터 앞에 설치된 경찰 저지선을 뚫었다. 파이낸셜센터 앞에는 부산경남울산 총학생회와 서울지역총학생회 등 대학생들이 집결해 있고, 코리아나 호텔 쪽으로 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시위대는 “이명박 물러가라. 이명박 나와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난 시위대를 경찰이 막지 못하면서 청와대 주변을 시위대가 완전이 에워쌌다. 허재현 김성환 최현준 기자 김도성 이규호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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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청앞 세종로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hyopd@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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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신:31일 오후 8시30분]
청운동쪽 대학생 연행시작…성난 시민들 거리로
31일 오후 8시30분. 5만여명이 모여 평화롭게 진행되던 촛불 문화제는 청운동에서 촛불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급변했다. 청운동은 청와대 턱밑이라 경찰도 쉽게 시위대에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대학생 등 100여명은 “청와대로 가겠다”며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경찰과 거친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곧바로 연행을 시작해 순식간에 85명을 전경 버스에 태웠다. 15명의 시위대는 계속 남아 항의하고 있으나 경찰이 포위망을 좁혀 와 연행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소식을 들은 시민 3천여명은 촛불 문화제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잔디광장을 박차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초를 들고 있던 시민들의 대열은 일순간 흐트러졌다. 시민들은 모든 차선을 점거한 채 서울역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대열 맨 앞엔 예비역 30명이 손으로 스크럼을 짜고 행진을 주도하고 있고, ‘토론의 성지 아고라’라는 깃발도 맨 앞에 보인다. 이들은 “이명박 물러나라. 쥐새끼를 때려 잡자”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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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오후 경찰이 서울 청운동사무소 앞 인도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을 강제연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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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행진하고 있는 최인석(19·서울 방학동)씨는 “문화제 장소가 비좁은데 사람은 너무 많아 무대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며 “나라를 구하려는 마음이 너무 급해 문화제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행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후 8시40분. 시민들이 <와이티엔> 앞을 지나면서 건물을 향해 “와이티엔 각성하라, 와이티엔 불꺼라”라고 외쳤다. 김규형(35)씨는 “와이티엔 사장이 친 이명박 인사로 바뀐 것을 항의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간 가운데 서울광장에 머물고 있는 본 대열이 거리로 빠져나가려면 1시간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시위대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서울역, 명동, 을지로 등으로 뿔뿔히 흩어져 거리로 나서고 있다. 허재현 최현준 기자 김도성 피디
[4신: 31일 오후 7시30분]
‘촛불바다’ 서울광장…6만명 “미친소 발로차”
서울광장에 6만여 촛불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 때론 함성과 함께, 때론 노래와 함께, 때론 분노를 담아 촛불은 6만 시민과 함께 타올랐다.
31일 오후 7시15분. 시민들의 함성과 함께 23번째 촛불 문화제가 시작다. 박원석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이 사회자로 나섰다. 연일 이어지는 집회로 그의 목소리는 이미 쉴대로 쉬었다. 그러나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느껴졌다. 시민들은 빨간 손팻말을 흔들며 환영했다. “이명박은 물러나라” 8자 구호가 서울시청을 흔들었다. 구호는 5번 반복되었다.
오늘도 다양한 시민들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다. 발디딜 틈이 없다. 집회 시작전 이미 참여 인원은 4만여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사회자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불렀다. “청소년 여러분 오셨나요?”라고 묻자 콘서트 장을 방불케할 함성이 터졌다. 여고생들도 큰 목소리로 “와” 했다. 사회자가 “직장인 여러분 오셨나요?”라고 묻자 다소 아저씨들의 함성도 터졌다.
오늘 유모차 부대도 1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고, 월드컵축구 예선전이 열리는 날이어서 인지 붉은 악마 머리 띠를 하고 나온 사람도 20여명이나 됐다.
오늘 자유발언 첫무대는 귀여운 촛불 소년, 소녀 24명이 <뽀뽀뽀> 노가바로 문을 열었다. 빨간 티를 단체로 맞춰 입은 아이들은 올망졸망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시국을 풍자한 가사는 의미심장하다. “아빠가 출근하면 기름값, 엄마가 시장가면 미친소. 우리가 학교가면 0교시, 우리들의 수면시간 4시간. 우리는 민주시민 촛불소녀들. 미친소, 민영화 대운하 싫~어.”
7시30분. 촛불 문화제의 타이틀 곡 ‘헌법 제1조’를 부른 가수 오지철씨가 무대에 올랐다. 오씨는 “이 노래는 이제 여러분의 노래다. 끝까지 잘 싸워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환경정의> 회원 10여명은 에어로빅 댄스를 선보였다. 엄마와 함께 무대에 오른 4살, 9살 꼬마들은 “발로 차, 발로 차, 미친소 안먹어”라는 노래 가사에 맞춰 귀여운 율동을 선보여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주최 쪽은 서울광장 주변에 10만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3신:31일 오후 6시45분]
주변 상인들도 시위대 격려 “우리도 공감해”
2만여 시민들이 종로, 을지로를 돌아 6시45분 서울시청 광장에 도착했다. 서울광장에는 이미 1만여 명이 더 모여 이들을 맞았다. 촛불 문화제 시작을 앞두고 도합 3만 시민이 모인 서울광장 안은 발디딜 틈 없이 꽉 찼다.
31일 오후 6시 을지로 5가. 시민들은 4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질서있게 을지로로 향하고 있다. 교통 경찰은 분주하게 시민들 옆에서 교통 정리를 하며 걷고 있다.
오후 6시 10분. 시위대가 자영업자가 밀집한 중부시장에 도착했다. 시장 상인들은 점포 문 앞까지 나와 시위대를 격려하고 있다. 지물포점을 하는 우아무개(35)씨는 “참여는 하고 싶은데 먹고 살기가 힘들어 참여할 수 없었다”며 시민들을 격려했다.
을지로 지하철역을 지날 때도 시민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박영일(53·노원구 상계동)씨는 “미국소도 문제지만 교육문제나 강부자 내각 등이 더 큰 문제다”며 “나는 이 시위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늦둥이 막내가 왜 이명박을 찍었냐고 어른들을 원망한다”고 덧붙였다.
오후 6시30분 을지로 2가. 트럭에서 대열을 이끌고 있는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이 “오늘 촛불 대행진을 하는데 우리 청와대로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외치자 시민들은 일제히 “그럽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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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오후 시청 앞 광장에 모인 3만여 시민들이 ‘국민이 뿔났다’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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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는 을지로 1가에서 상여시위를 벌이고 있는 전농 소속 농민 20여명과 만났다. 노란 상복을 입은 이들은 ‘소머리 상여’를 앞세우고, “고시철회, 협상무효, 미친소를 청와대” 등의 곡소리를 내면서 시민들과 마주쳤다.
오후 6시45분. 드디어 시청 앞 광장이다. 시위대가 도착하자 이를 지켜보던 여고생들이 팔짝팔짝 춤을 추며 “와”하고 함성을 질렀다. 행진 대열 맨 앞의 트럭은 “빵빵” 2번의 경적으로 화답했다. 남색 치마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은 “담임 선생님과 3시부터 와 기다리고 있었다”며 “뜻을 같이 하는 국민들을 만나니 반갑고 힘이 난다”고 말했다.
오후 6시50분. 뒤늦게 시청에 들어온 시민 2천여명은 이미 꽉찬 광장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덕수궁 앞 8차선 도로를 점거했다. 이때 어디선가 전투경찰이 나타나 시위대를 막아섰다. 시민들은 제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일 태세였다. 김원준 남대문 경찰서장이 나와 시위대를 설득했다. 김 서장은 “프라자 호텔쪽 도로를 제공할 테니 그 쪽으로 이동하시라”고 권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김 서장을 향해 “차 빼라. 꺼져라”고 응수했다. 경찰은 끝내 시민들의 8차선 점거를 막지 못했다. 허재현 기자
[2신:31일 오후 5시20분]
“고교생이 지핀 촛불 대학생이 지키겠다”
31일 오후 5시20분. 약식 집회를 마치고 곧바로 거리 행진이 시작됐다. 경찰은 현재 대학로에 모인 인원을 6천명으로 추산했고, 주최쪽은 1만명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시민들은 2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대학로를 따라 종로쪽으로 향하고 있다. 대열의 맨 앞에는 4.5톤 트럭이 이끌고 있고, 시민사회단체 원로들이 “국민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국민의 힘의로 미친 소 막아내자”는 펼침천을 들고 뒤를 따리고 있다.
시위대는 “고시철회, 협상무효, 민주시민 함께해요”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5시40분. 시위대는 이화 4거리에서 멈췄다. 김한선 연세대학교 법대 교수가 대국민 호소문을 낭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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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서 대학생들이 촛불모양의 마스크를 쓰고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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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정부가 고시를 강행했다고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중략) 6월에는 촛불의 광장을 전국 방방 곳곳으로 넓힙시다. 그리하여 6월항쟁 21주년이 되는 날 전국을 100만개 촛불로 밝혀 마침내 국민승리를 만들어 냅시다.”
인도에서 지켜보던 시민들은 박수로 호소문에 화답했다.
이에 앞서 5시. 그 동안 침묵을 지켰던 대학생들이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본격적인 행동을 결의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저지와 검역 주권 회복을 위한 대학생 대책위원회’는 “검역주권을 회복하고 미친소, 미친 정부를 대학생이 앞장서 때려잡자”며 “대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용리브가 숭실대 총학생회장은 “촛불을 지핀 것은 고교생이지만 촛불을 지키는 것은 대학생이 할 것”이라며 “전국 모든 대학에서 동맹휴업을 꼭 쟁취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날 행동 선언에는 5천여명 참여해 앞으로 촛불시위에 대학생들이 본격적으로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경찰은 거리행진하는 시위대를 향해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추세로 평화롭게 행진이 진행된다면 시위대는 7시쯤 서울광장에 도착해 예정대로 촛불 문화제를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허재현 기자
[1신:31일 오후 4시30분]
‘10만 촛불을 목표로’ 서울 곳곳 집회 시작
청계광장과 서울광장에 이어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도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구호가 울려퍼졌다.
31일 오후 4시30분. 시민 5천여명은 마로니에 광장을 중심으로 대학로 앞 1차선 도로를 차지했다. 시민들은 인근 혜화역에서 내려 삼삼오오 손을 잡고 마로니에 공원으로 모여들고 있다. 경찰 쪽은 전투 경찰 대신 교통 경찰을 투입해 차량 통제만 하고 있다. 마로니에 광장 주변은 긴장보다 율동과 노래가 어울려져 오히려 시민들의 축제 분위기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이날 마로니에 광장을 시발점으로 종로, 광화문을 거쳐 시청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국민대책회의는 이날을 ‘집중행동 집회’로 잡아 10만여명이 촛불을 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을 강행함에 따라 시민과 누리꾼들의 반발이 주말을 맞아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3시30분에는 동록금 네트워크와 대학생 교육대책위원회가 주최하는 등록금 인상 반대집회가 열렸다. 대학생 2천여명은 마로니에 공원 안쪽에서 집회를 열고, 이명박 대통령이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폭탄과 민영화 폭탄 등을 날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지나가는 시민들을 발길을 멈추고 대학생들의 노래와 율동을 지켜봤다.
김현웅 한총련투쟁본부장은 선언문에서 “이명박 정부와 18대 국회가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할 때까지 범국민적 등록금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앞서 시민 10여명이 경복궁과 덕수궁 앞에서 게릴라 시위를 벌였다. 다음 아고라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이라고 밝힌 이들은 ‘토론의 성지 아고라’라고 쓴 깃발 아래에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이명박 정권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경찰은 이들의 시위를 막지 않았지만, 종로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사진 채증을 시도해 항의를 받았다.
남영수(47·서울시 대방동)씨는 “이곳은 외국인이 잘 다니는 명소로 미친소 반대를 홍보하고 싶었고, 과거 통치자들이 살던 곳이라 국민이 왕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자발적으로 시위를 벌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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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오후 서울 인사동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고시철회를 요구하며 미국산 육우와 같은 품종의 소머리를 상여에 얹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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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고시를 강행하면서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보였다. 김혜용(36·서울 영등포구 신길1동)씨는 “고시를 발표한 것은 국민들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자기들 생각대로만 끌고가는데,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국민투표를 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연중(45·서울 금천구 시흥동)씨는 “이명박은 제왕적으로 정치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촛불시위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시청 앞에는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등이 고시강행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시민 2천여명은 무대 앞에 모여 자유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서울광장 주변을 전경 버스로 에워쌓고 시민들의 도로 진출을 차단하고 있다.
한편,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이날 오후 2시30분께 상여를 메고 청계광장을 출발해 청와대로 행진했다. 전농 소속 농민 15명은 ‘소머리 상여’를 앞세우고, “고시철회, 협상무효” 등의 곡소리를 냈다. 이들은 오후 4시께 인사동 부근서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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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중계팀 총괄 = 함석진 박종찬 기자 취재 = 허재현 최현준 김성환 기자 사진 = 김정효 기자 영상 = 이규호 은지희 박수진 김도성 피디 편집 = 박상철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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