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 ...

[스크랩] [문성근] 인간 김대중, 문익환 그리고 노무현

그리운계절 2009. 3. 19. 08:49

 

그때...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 당시...

문목사님 가족이 모두 모여서 의논한 끝에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의하시고 쓰신 글입니다.

 

문목사님 "가족"이 지지한다는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문성근씨가 대선 과정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셨는지...

오늘 황금어장 보면서 새삼... 되새겨지네요...

 

 

안티조선 우리모두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area_daegu_gyungbuk&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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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문성근님의 글입니다.

인간 김대중, 문익환 그리고 노무현



최근 경제나 정치, 그리고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매우 냉소적이 되어 있거나 비관적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심지어, 화를 내는 사람들 까지 있습니다. 언뜻 현실이 절망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나 분명히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현실이 이렇게 참담하게 보이는 이유를 따져보면 너무나 단순하고, 따라서 치유책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송구스럽고 또 주저되지만 얘기를 문익환 목사에서 시작하는 것을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솔직히 저는 제 아버지 문익환 목사를 잘 모릅니다. 저는 그분 살아 생전에, 그리고 돌아가신 후에도 그분이 도대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감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 부족한 머리와 좁은 가슴으로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차원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문목사의 삶 중에서도 제가 특히 감당이 안 되었던 부분은 이것입니다.
문목사는 1976년 59세에 처음 구속된 이래 94년 77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생애 마지막17년 중에서 11년 반을 교도소에서 살았다는 겁니다. 5년 반을 밖에 있었고 11년 반을 교도소 안에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정치범에게는 난방을 해주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물이 10cm, 15cm씩 얼어 있습니다. 그런 방에 70살 넘은 노인네가 담요 몇 장만 가지고, 맨몸으로 버티는 겁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또 들어가지",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또 들어가지" 이런 걸 뻔히 알면서 도대체가 6번씩이나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입니다. 제가 어떻게 그걸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최근, 『문익환평전』을 쓰고 있는 김형수 시인을 만났더니 눈이 번쩍 뜨이는, 정말 귀가 번쩍 뜨이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김형수씨가 저한테도 뭘 물어보겠다고 왔길래 대뜸
"나 문목이 누군지 모르겠어" 그랬더니 이렇게 설명을 해주더군요.
문익환 집안은 1905년도에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해 갈 때 만주로 건너갑니다. 윤동주 시인 집안, 김약연 집안 해서 5가문이 만주로 넘어갑니다. 이 집안들이 모두 한 식구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일본놈 첩자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연히 해방구가 되었지요. 안중근의사가 저희 집에 묵으시며 뒷동산에서 총연습을 하셨다니까요. 문 목사는 여기서 몸으로 민족주의를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해방 후에 남북한 정권이 만들어지는 걸 보니까, 이것은 완전히 민족주의의 패배입니다.
그래서 문 목사는 당분간 접어두고 공부만 합니다. 그러면서 1968년부터 처음 잡혀가던 1976년까지 8년 동안 구약성경 번역을 합니다. 구약학자로서, 또 종교인으로서 문 목사에게는 영광이었죠. 그리고 필생의 사업이었습니다. "이거 마치면 죽어도 좋다"고 할만큼. 그리고 번역이 정리되어 가던 1976년부터 사회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구약성경이 무엇입니까? 그 안엔 수많은 선지자의 삶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1976년도에 나올 때 문익환은 성경에 나와 있는 선지자들의 삶을 수없이 "따라 살겠다"고 연습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지요.
이 선지자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까?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면서
"자, 가자!" 이렇게 외치고 곧바로 위정자들에게 잡혀 죽는 게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 선지자들의 삶을 따라 살겠다는데 그에게 공권력이 눈앞에 보였겠습니까?
"자, 우리 민족의 갈 길이 무엇이냐? 그 길을 향해서 가자!" 그대로 전진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공권력이 잡아들이면 구속되는 거구, 플어 주면 나왔다가, 다시 "자! 죽으러 가자!" 외치면 또 들어가고....그래서 6번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구속되었던 것이 아니냐.
이게 그의 삶이었다….

이런 설명을 듣는 순간, 이해가 되었습니다. 인간 문익환에게는 감옥을 넘어 죽음을 넘어 바라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민족의 비젼이고 '희망'이었습니다.

1970-80년대 우리 민족의 피맺힌 염원은 무엇이었습니까? 희망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민주주의의 실천'과 '민족통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이루어내었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민주정권'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민주정권'은 '민족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6.15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모든 것이 원활하게 잘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안 돌아갑니다. 되는 일이 없습니다.
뭐든지 발목잡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바로 지역감정입니다. 정치가 지역 구도로 나뉘면서, 지역감정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문민정부'고 '국민의 정부'고 모두 다 소수정파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시대 우리 민족의 과제는 무엇입니까? 바로 '지역통합'입니다.
지금 노무현이 도대체 뭐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고 민족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 지역감정을 끝장내고 지역통합 다수파 민주정권을 창출하자!" 이것 아닙니까!
지금 노무현이 왜 저 역사를 건너 링컨을 만나고 있습니까? 그 옛날 링컨이 그랬던 것처럼,
"그 지역 통합을 분노와 저주가 아니라 화해와 사랑으로 이루어내자, 그렇게 해야 우리 민족이 살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링컨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마침내 16대 총선에서도 떨어지던 그 밤에, 온 국민이 그의 낙선에 절망하고 분노하던 그 밤에 그는 링컨을 만나 희망을 발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무현이 지난 10년을 어떻게 보냈습니까? 호남을 고립시키는 3당 합당 때 그냥 따라갔으면 김영삼 대통령이 그를 이인제지사와 함께 후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지목했었겠지요. 이인제 지사보다 앞줄이 아니었을까요? 후배를 '챙긴다면'......그런데 거기에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의 선거지역구가 경기도나 서울이었으면 또 모릅니다. 부산인데.... 안가면 의원 안하겠다는 각오 아닙니까? 현실정치인으로서 자살행위였지요. 그리고,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에 가서 지역감정의 벽에 대고 계속 머리 짓이기면서 싸웠습니다. "내 대가리 깨지나, 지역감정이란 벽에 금이 가나? " 백전백패지요. 그러나 장렬하게 전사해서 국민에게 감동을 주면서 그는 부활합니다.

문익환 목사는 "민주주의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라고 했습니다.
자! 그런데, 그 '민중의 부활'도 '민족의 부활'도 먼저 <지역통합>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15년 뼈저리게 확인한 것입니다.
노무현은 지난 15년 우리 역사에서 '지역통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온 유일한 정치인입니다.

그런데 뭘 망설입니까? 도대체 무슨 정치적인 계산이 아직도 필요합니까? 그가 후보로서 미숙해 보이나요? 미숙해 보일 수 있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30년 준비했습니다. 이회창 후보도 7-8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은 일 년여밖에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부족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우리가 다같이 손을 잡고 이 사람을 무등 태우고, 이 사람을 우리의 대표로 만들어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팔짱만 끼고 구경만 하고 있을 겁니까? 노무현이 인맥, 학맥이 부족하다구요? 그러면 김근태 형님이 도와주면 될 거 아닙니까.
당내 지지기반이 부족하다구요? 한화갑 최고가 도와주면 될 거 아닙니까.
이렇게 개혁세력끼리 힘을 합쳐서 그를 범민주세력의 연합후보로 만들어낸 다음에, 그렇게 해서 지역감정부터 완화한 다음에, 차례대로 하시면 될 거 아닙니까?

역사는 왜 배웁니까?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 아닙니까? 지난 15년 우리 해 볼 것 다 해 봤습니다.
두 김선생이 따로따로 출마해서 실패했습니다.
김영삼후보가 수구세력의 품안에 들어가 집권은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김대중후보는 수구세력을 옆구리에 끼고 출발했으나 처음부터 소수정파라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남은 마지막 방법은 무엇입니까?
지역에 관계없이 민주화추진세력이 다시 뭉치는 일만 남았습니다. 정말이지 다른 방법이 있다면 말씀 좀 해 봐 주세요. 없잖아요? 그런데 왜들 이러십니까?

지금 민주당 경선에 나오신 분들 중에 훌륭한 분이 많이 계십니다. 저도 깊이 존경하는 분도 있습니다.
좋습니다. 'DJ계승론', '부패척결론', '세대교체론', 'CEO대통령론' 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머리가 나빠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니면 정책이 나빠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진실로 김대중 대통령은 '출중한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허우적거립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정치가 지역구도로 나뉘어 우리 모두 소수정파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구 세력이 지역감정과 색깔론을 악마적으로 이용하는데 속수무책 당해온 것일 뿐입니다. 여성이
강간당할 때 이런 기분일까요?

그래서, 지금은,...우선은... 노무현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지금 청와대에 계신 김 대통령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1980년 광주가 피바다가 되었을 때 저는 서울에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리고 한 두 달이 지나서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공판이 열렸습니다. 그때 육군본부 법정에 나타난 김대중 피고의 도대체 뼈밖에 안 남은 얼굴을 보면서, 그러나 반짝반짝 빛나는 그의 눈을 보면서
'아, 정말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구나. 내 힘닿는 한 도와야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공범의 가족이니까 공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국내 신문에서는 도대체 공판 내용을 보도해주지를 않았습니다. 외신기자들도 소위 '풀(pool)제'라고 해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공판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대부분 외국인들입니다.
쉬운 우리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판 내용을 어떻게 따라 갑니까?
그래서 저는 '내가 이 공판 기록을 작성해야 되겠다, 그래서 국내 여러분께 알리고 해외 여러분께 알려야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의 가족에게 녹음기는 물론이고 연필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꼼짝 않고 앉아서 그 공판 내용을 지켜보는 겁니다.
그냥 공판 내용을 전부 외우려 애쓰는 겁니다. 그리곤 집에 가서 외운 걸 밤새 도록 노트에 썼습니다.
그런데 1979년에 파키스탄에서 군사쿠테타가 일어났거든요. 놀랍게도 파키스탄 군부는 민간인 부토 대통령을 죽여 버렸습니다. 사형을 집행 해버린 겁니다. 바로 김대중 피고에게 걸린 죄목은 사형이었습니다. 사형 구형을 앞두고 있었고, 결국 사형 언도가 내려졌습니다.
'아, 죽이면 안 되는데…, 제발 살려 주십시오.' 무릎꿇고 기도 드렸습니다.
제 일생에 그만큼 기도했던 때가 없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우리 민족을 위해서 이 양반을 죽이면 안됩니다.' 진정으로 깊이 있게 혼신을 다해 기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때같이 제 대가리가 나쁜 걸 한탄해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한 줄이라도 더 외워서 쓸 수만 있으면 김대중이 안 죽을 수도 있는데…',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울며 공판기록을 작성했습니다.

어떻게 이룬 민주적 정권교체입니까. 조선부터 치든지, 동학 때부터 치든지, 그도 아니면 이승만 정권 때부터 치든지… 도대체 얼마 만에.....,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정권교체를 일궈냈는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겨우 민주정권을 만들어 냈는데, 어떻게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히는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배우입니다. 배우는 대본에 표현된 인물을 체화하는 게 직업입니다. 저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내가 김대중 대통령이라면 지금 어떤 심정일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도 '내가 김대중 대통령이라면…'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이 정국을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 4수를 거쳐서 대통령을 할만큼 무서운 집념을 가진 현실 정치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김선생이 세운 아태재단의 정식 이름이 뭡니까?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입니다.
한국도 아니고 아시아태평양....그러니까 "나는 다른 정치인과는 차원이 다른 민족의 지도자이다"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진 분입니다.
그런 김선생이 50년 현실 정치인의 마지막을 걷고 있습니다. 이제 아마도 그 분은 민족의 지도자 반열에 오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현실 정치를 접기까지 1년 안에 김선생은 무엇을 해결해야할까요?

김선생께는 가슴에 '한'이 있습니다. 일생에 너무 괴롭힘을 당해서 그만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버린 '한'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용공조작입니다.
말이 좋아 용공조작이지 직설적으로 말하면 "너, 빨갱이 아니냐?" 이겁니다.
오죽하면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하고 영국에 계실 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거 때마다 나오는 용공 조작에 대해서 피눈물이 난다. 피를 토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용공조작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바로 71년 선거에서 '4대국 보장론'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된 일입니다.
"빨갱이는 다 때려 죽여야 한다"던 시절에 그는 '4대국 보장론'을 이야기했습니다.
이건 가히 혁명적인 정책이었습니다. 이때의 '4대국 보장론'이 진전되고 발전돼서 3단계 통일방안이 되었고, 그 1단계를 이번 6.15 선언으로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 김대중이 6.15선언을 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 얼굴에서 그걸 못 느끼셨습니까? 저는 느꼈습니다.
그건 "국민 여러분, 저더러 빨갱이라 그러셨죠? 아닙니다. 저 빨갱이 아닙니다. 이제 믿어 주시겠어요? 제가 하고 싶어 했던 것은 바로 이겁니다. 민족의 앞날을 위해서,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 이렇게 화해와 교류 협력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것을 이야기하고 계셨던 겁니다.
그러니까 김선생의 첫 번째 '한'인 용공조작은 김 대통령 스스로 6.15 선언으로 극복해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남은 두 번째 '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역감정입니다.
지난 71년 대통령선거, 솔직히 김대중후보가 이긴 선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효상 국회의장이 대구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호남 사람들은 대구산 양말도 안 신는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선거 전날 영남지역에 삐라가 뿌려집니다.
"호남인이여 단결하라!" 이것을 본 영남분들이 기분 나빠지셨지요. 그래서 졌습니다. 지역감정은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87년을 지나면서 극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봅시다.
87년 이후 이 지역감정이 악화되는 과정에서 인간 김대중이 '난 책임 없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정말이지 평생 그 자신이 피해자였는데, 그만 지난 15년 역사에서는 "나, 책임 없다"고 말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데 인간 김대중의 눈감을 수 없는 '한'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김 대통령이 퇴임하신 후 카터 대통령과 같이 집 없는 사람들 위해 집 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리 불편하시니까 저도 옆에서 나무도 날라드리고 망치도 갖다 드리고 그러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지역 구도로 나뉜 정치를 그대로 후배에게 넘겨주고 물러나면, 정말 나무에 못 박으면서 인간 김대중의 마음이 편하겠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집 짓고 있는 그를 보면서 우리 국민은 마음이 편하겠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 지난 수십 년이 억울하지 않습니까? '국민의 정부' 4년이 억울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김대중을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서, 이 나라의 진정한 민주주의 실천을 위해서, 이 나라의 민족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 2002년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지역감정을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그걸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지역통합 다수파 민주정권>을 도대체 누가 만들 수 있습니까?
노무현입니다. 노무현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

문익환목사가 평생의 삶을 바쳐 꿈꾸고 실천하려 했던 일, 그러나 김대중선생마저 끝내 꽃 피우지 못한 '민주주의 실천'과 '민족통일'을 위해서, 우리는 먼저, <지역통합>을 이루어 내야 하기 때문에, 저는 지금 노무현과 함께 갑니다.

국민 여러분의 힘이 절실합니다.
민주당에서 개국이래 최대 정치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4월27일에 대통령후보를 뽑는데 국민의 말을 듣겠다는 기특한 발상입니다. 후보를 뽑는 선거인단이 모두 7만명인데 그 중에 3만 5천명은 국민 여러분의 몫입니다. 여러분께 정당에 발을 담그라는 말이 아닙니다. 단 하루만 시간 내서 국민선거인단이 되어 주시면 됩니다.

지역별로 <국민선거인단> 공모 마감일이 다릅니다.

제주: 2/25, 울산:2/26, 광주:2/26, 대전:2/27, 충남:3/5, 강원:3/6, 경남:3/12, 전북:3/13, 대구:3/18, 인천:3/19, 경북:3/20, 충북:3/26 전남:3/27, 부산:4/2, 경기:4/3, 서울:4/9.

아직 마감일이 지나지 않은 지역분들께서는
지금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전화 783-6581,6576>으로 전화해 주십시오.
친절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움직이면, 국가와 역사가 바로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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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읽어도 가슴이... 저밉니다.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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