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

[스크랩] "응답하라 1997" 역대 최고의 드라마였다

그리운계절 2013. 9. 11. 14:58

  하루에도 아침 저녁으로 각종 채널에서 수십편의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얻는 작품은 아주 가끔씩 만날 수 있다.  누구나 마음 속으로 재밌게 봤었던, 최고로 꼽을만한 드라마들이 나름대로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을동화", "다모", "환상의 커플", "그저 바라보다가" 같은 작품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절대적으로 나를 멘붕시킨 드라마 한편이 탄생했다.  거짓말 안 보태고 10번도 넘게 다시보기를 하고있고, 그렇게 다시 볼때마다 웃고 또 울다가, 드라마에 나왔던 배경음악들을 틀어놓고 하루종일 틈만 나면 "정은지"(여자분들이라면 서인국?), "응답하라1997"을 검색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좋은 드라마들은 많이 있었지만, 이건 정말이지 역대 최고의 드라마라고.  그리고 나는 역대 최고의 훼인이 되어 이 드라마의 여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일상이 그렇게 싫지많은 않다.  가끔 좀 짜증이 날 뿐이다.  이럴땐 아주 사소한 것들이 위로가 된다.  고작 음악 한곡이 말이다.........(중략).........육체가 떠날 수 없다면 영혼이라도 떠나야지.  나는 지금 90년대로 돌아간다."

 

  고등학교 동창회 장소 앞에서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며 추억에 잠기던 은지의 모습.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같은 심정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고작 음악 한곡에 우린 위로받았고, 공감했으며, 함께 그 시절로 돌아가 우리들의 추억에 잠겼다.

 

 

  "오늘 이 동창회, 이 테이블에서 한 쌍의 커플이 결혼 발표를 한다."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누구랑 누가 어떻게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되는걸까?  이땐 그저 단순한 호기심 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호기심은 '둘이 꼭 잘됐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둘이 안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으로, 급기야 '둘이 안되면 피디고 작가고 방송국이고 가만 안둘기다'라는 분노와 애정으로 변해갔다.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다.  시원의 남편이 누구인가 하는 미스테리 하나 만으로 이렇게 한주 한주 애태우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될줄은.

 

  사실 대한민국 드라마 다 거기서 거기 아니던가?  굳이 드라마 안 보더라도 제작발표회 사진 한장만 보고도 짐작될 정도로 대충 내용은 뻔하다.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있고, 그 둘을 방해하는 악역 조연들이 있으며, 갖은 훼방과 음모 속에서 결국 둘은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주인공들 직업이 뭔지, 로케이션 장소가 어디인지, 배우들이 누구인지 정도만 다를 뿐이다.

 

  이 드라마도 처음에 서인국과 정은지가 주인공이라고 밝혔고, 심지어 제작발표회에 송종호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숨죽여 긴장하며 볼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의 구성 자체가 적절히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남긴 단서들로 시청자들이 추리하게 만들었고, 주인공의 로맨스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의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까지 온전히 이해하고 감정 이입이 되도록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막장 없이, 그 흔한 악역 없이 이런 가슴 따듯한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다니.  정말 놀랍고 고마울 뿐이다.

 

 

 

  "......안승호 안승호 안승호 안승부인 에쵸~튀~"

 

  HOT 1집 타이틀곡 전사의 후예.  그 당시에도 전혀 좋다는 생각 안 들었던 노래고, 이 드라마 보고 다시 들어도 전혀 좋다는 생각 안 든다.  그런데 그걸 따라부르는 시원이와 빠순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흥겹고 재밌는지, 이 장면만 몇번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원곡보다 훨씬 낫다.

 

  열심히 따라부르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토니오빠 파트가 나오자 멘붕해서 바라보는 모습.  나중에 정은지의 인터뷰로 알게 됐지만, 원래 대본은 계속 춤추는 설정이었지만 은지의 아이디어로 바뀌게 된 장면이라고 한다.  정말 이 설정이 훨씬 나았다.  그저 대본에 써있는대로, 시키는대로만 열심히 잘 하는줄 알았는데...  정은지라는 이 아이, 그정도 수준이 아니다.  타고난 뭔가가 있다.  "연기 천재", "연기 신동"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만나지 마까?"

 

  시원이에게 유정이는 오늘 오전에 윤제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지만 아직 대답을 못 들었다고 얘기한다.  "우리 둘이 사겨도 니 괘얀나?  둘이 어렸을 때 부터 친구쟈나?"  유정이는 가장 친한 친구인데도, 방금 토니오빠 땀으로 젖은 티셔츠를 양보받았는데도, 시원이는 선뜻 난 괜찮다고, 니들 사귀라고 말하지 못한다.  지금은 그저 토니오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현실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은 누구인지 정답을 알지 못하고 이리 쿵 저리 쿵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였으니까.

 

  윤제는 그동안 자기한테 고백하는 여자들은 모두 단칼에 거절해왔다.  하지만 유정이는 그럴 수 없었다.  시원이의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고, 거기에 대해 시원이의 마음은 어떤지 알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명장면..."만나지 마까?"  이 한마디에 당시 윤제의 모든 감정이 담겨있다.  그는 알아야 했고,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어설픈 이 고백은 자기의 감정만 들켜버렸을 뿐이다.  3번이나 물어보는 "만나지 마까?"라는 질문에, 만나라고도, 그러지 말라고도 하지 못하는 시원이의 감정.  유정이도 윤제도 그녀에겐 소중한 친구이고, 아무도 상처받는걸 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둘이 사귀는게 아무렇지 않은것도 아닌 자기 감정은 무엇인가 혼란스러울 뿐이다.

 

  결국 윤제는 생일선물로 받은 쿠폰을 꺼내든다.  여러가지 무조건 시리즈 중에서 제일 강력하고 시청자들이 제일 궁금해하던 "무조건 소원 들어주기" 쿠폰을 바로 사용한다.  무조건 소원 들어주기 쿠폰 옆에는 "무조건 응~ 이라고 하기" 쿠폰도 있었다.  그걸 사용해도 됐을텐데, 굳이 소원 쿠폰을 바로 사용할만큼 윤제의 마음은 절실했고 시원이의 마음을 확인하는것은 윤제에게 가장 큰 소원이었을 것이다.  "소원이 뭔데?" 라고 묻는 시원이.  나 또한 속으로 소원이 뭘지, 뭐라고 말할지 굉장히 궁금했다.  내가 생각한건 "솔직하게 대답해줘" 뭐 이정도였다.  그런데 윤제의 소원은....

 

  "만나지 마라 캐라..."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윤제 이 바보같은 녀석.  결국 시원이의 마음은 확인하지 못한채 자기 마음만 완전히 고백해버리고 말았다.

 

  윤윤제 역활 오디션 과제가 바로 저 "만나지 마라 캐라"라는 대사였다고 한다.  그리고 A급 스타도 아니고 연기 경력도 거의 없는 서인국만이 저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고 한다.  저 대사 7글자가 서인국의 인생을 바꾸어놓았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려놓았다.  정말이지 서인국 정은지는 신의 한수였다.

 

 

 

 

  "열여덟.  흔히 어른들은 우리들 나이를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 나이라고 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그 어떤 어른보다 심각했고, 치열했고, 힘겨웠다."

 

  형에게 난생 처음 엉덩이를 얻어맞은 윤제.  떠들지 않았는데도 맞아야 했던 그는 억울했고, 또 가짜 티셔츠로 친구들에게 놀림받은것이 속상했다.  하지만 그런 형은 자기를 위해 모든것을 포기하고 희생한 하나뿐인 가족이다.  유정이의 마음에 대답해주지도 못하고, 시원이의 마음은 확인하지도 못한 그는 그저 모든것이 힘겨워 방문을 걸어잠그고 서럽게 흐느낄 뿐이다.  시원이는 끊어진 비디오 테이프에 자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유정이는 대답없는 윤제의 삐삐번호를 계속 누르고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정말이지 우리들의 열여덟도 그랬다.  예전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 그땐 왜 그렇게 심각하고 치열하고 힘겨웠는지....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정말로 그 모든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아져서가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도록 둔해져가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방법들을 배워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이기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이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다.

 

 

 

 

  "붙여도 자국 남쟎아~~~~~ㅠㅠ"

 

  이 장면에서, 저 대사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나중에 은지 인터뷰 보고 알게된 사실인데, 놀랍게도 대본이 아니라 100% 정은지의 애드립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컷 사인이 떨어지자 마자 현장 스테프들도 크게 웃으며 칭찬해줬다고 한다.

 

  연기 경력은 커녕 연기 수업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는 정은지.  2차 오디션을 보기 전에 5시간 연기 레슨을 받은것이 전부라고 하는데, 그 레슨 조차도 도움은 커녕 오히려 배운대로 대본을 분석하고 끊어 읽으려 보니 100번을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더라고.  그래서 포기하고 '시원이가 어떤 심정으로 이런 얘기들을 했을까' 생각하며 소설을 읽듯 읽어갔더니 대본이 재밌어지더라고 훗날 인터뷰에서 밝혔다.

 

  캐릭터를 분석하고, 대사를 적절히 끊어서 읽는 것, 표정과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 등등,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여러 잔기술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궁극의 연기력은 그런 잔기술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대본속의 그 인물이 되는 것, 그것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더욱 어려운 궁극의 경지가 있으니 "관객들이 생각하는 작품속의 바로 그 인물"이 되는 것이다.  미묘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다르고 훨씬 더 어렵다.

 

  그런데 정은지는 정말 아는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연기"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자기 자신이 시원이 되어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은지가 가진 모습 자체가 시청자들이 바라고 상상하는 시원이의 모습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성시원이 곧 정은지로 느껴지다니..  생초보 주제에 궁극의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성시원, 윤윤제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만으로 이들의 연기자로서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혹자는 그냥 운이 좋을 뿐이라고, 이번 한번 뿐일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뭐 운이 좋다는 것은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기만의 확실한 색깔, 확실한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고 그런 배우도 많지 않다.  그 어려운 일을 아무것도 모르는 정은지가 벌써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이돌 중에서는 단연 원탑이며, 일부 톱 배우("한가"한 분, "김태"운 분 등..)보다 나은 수준이다.  그녀의 다음 활동이 벌써부터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이유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독특하다.  지금껏 어떤 드라마가 한편 내내 고스톱을 치고 있었는가?  나중에는 또 한편 내내 축구경기를 보고있고, 한편 내내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또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나중에 그 모든 퍼즐들이 맞춰지며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어 비로소 각 편마다 내걸었던 타이틀이 어떤 의미였는지 전달한다.  시원이가 왜 가출을 했는지, 왜 선뜻 윤제에게 평소처럼 전화하지 못했는지 밝혀지는 과정 하나하나가 흥미롭고 재미있다.

 

 

 

 어릴 때 부터 쭈욱 똑같이 살아왔던 윤제와 시원.  그러나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시원이는 성재가 씻는 모습을 보면서는 "브라자 사줄까?" 농담을 건네며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윤제를 보면서는 왠지 당황스럽고 부끄러워서 순간 어찌할줄 모르고 그 자리에 있었다.   윤제 또한 그런 시원이를 보며 가슴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이 감정이 부끄러움인지 아니면 첫사랑의 설레임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확인"

 

  그 확인의 결과는...  시원이는 아직 덜 자랐다는 것이다.  ㅋㅋ  아니면 윤제가 너무 빨리 자랐거나.  ㅋㅋㅋ  아무튼 무모한 확인의 대가를 윤재는 톡톡히 치뤄야 했다.  음...하지만 남자들은 알고있다.  얻어 터지면서도 속으로 윤제는 웃고 있을 거라는 것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를 위해 머리를 깎았습니다."

 

  모유정으로 출연한 신소율과 정은지의 궁합도 굉장히 좋았다.  신소율은 정은지에게 없는 연기 경력과 HOT 빠순이로서의 실제 경험이 있고, 은지에게는 소율이에게 없는 네이티브 부산 사투리가 있었다.  이 둘이 서로를 도와가며 서로의 캐릭터를 완성시켜 주었음에 분명하다.

 

  또, 그 당시 삐삐를 쓰던 세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에피소드. (삐삐는 지금으로 따지면 음성메시지만 남길 수 있는 핸드폰 같은 기기다)  알수 없는 번호(보통은 1004)로 찍혀서 남겨져 있는 음악 선물을 누구나 한번쯤 받아보았을 것이고 또 선물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을 들으며 누굴까 상상하며 설레며 잠 못 이루곤 하지 않았던가.

 

  윤제의 1004는 누구인가 하는 큰 이야기 속에서 이 드라마는 중간 중간 지루할 틈 없는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준희의 "망가가 뭔데?" 하는 순진한(?) 질문에 남자들이라면 배꼽을 잡고 웃었을 것이다.  "여기서 야구얘기가 왜나와!!!!!!", "당신 해태 쁘락지여?", "부랄친구다." 등등 쉴틈 없이 명대사가 속출한다.  부모님의 H한 모습을 우연히 보고 가뜩이나 어색하게 모여 앉아있는 시원이 가족들이 애써 태연한척 대화를 나누다가 아빠의 그곳에 떨어져버린 빵빠레에 황급히 시원이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 또한 대박 웃음을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밝혀지는 1004의 정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말못할 비밀을 가진 사람은 바로 준희였고, 그 비밀은 시원이와 준희 둘만의 비밀이 된다.  그리고 비밀을 공유한 준희와 시원이는 더욱 허물없는 친구로 어울려다니고, 윤제는 그런 두 사람이 신경쓰이기만 한다.

 

  한편 윤제의 형 태웅이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태웅이를 많이 좋아하고 그의 모든 것을 갖고싶어하던 어떤 소녀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소녀가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그녀가 다름아닌 시원이의 언니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그 여행에 함께 가자고 떼쓰던 그녀를 애써 달래서 혼자 보냈던 그는 더욱 큰 죄책감과 괴로움에 휩싸인다.  만약 내가 그때 함께 있었더라면 어쩌면 그녀를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어쩌면 차라리 그녀와 함께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우연히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던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태웅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그런 그를 시원이 불러세우고....

 

 

 

  "오빠, 이거 저 주세요."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저렇게 충격적인 비쥬얼의 장면이 있었던가?  저렇게 이쁜척 하지 않은 여배우가 있었던가?  만약 조금이라도 "급"이 있는 배우나 아이돌이었다면, 현장에서 모니터 하고 저런 장면을 확인하고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도록 가만히 있었을까?

 

  하지만 정말 역설적이게도 저렇게 이쁜척 하지 않는 모습 자체가 너무나 순수하고 사랑스럽다.  그런 순수한 모습으로 그녀는 자신이 뭘 하고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마치 예전에 자기 언니가 그랬던 것 처럼 "이거 저 주세요" 라고 그에게 말하고, 그러라고 했을때 그녀와 똑같은 모습으로 기뻐했다.

 

  시원에게서 처음으로 마음속에 묻어놓은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 태웅.  그리고 여기서 흘러나오는 서지원의 <I miss you>...

 

 <처음엔 넌줄 알았지 / 너와 모든것이 닮아서 /

   흔들리는 마음은 점점 알 수가 없어 / 두려움이 앞선 미안함 /

   문득 너와 같이 있는 착각에 / 너의 이름을 불렀지 /

   우연히 그애의 옆모습을 볼 때면 / 왜 난 목이 메일까....>

 

  그리고 그런 시원을 혼란스러우면서도 아련하게 바라보던 태웅의 모습...  정말이지, 역대급 명장면이었다.

 

  현재 동창회로 장면은 전환되고 뒤늦게 태웅이 도착한다.  시원은 4일치 보수가 들어와서 예전 그때처럼 손을 흔들며 좋아하고, 그런 시원의 머리를 태웅이 귀여운듯이 쓰다듬는다.  이어지는 떡밥, "오늘 이 동창회에서, 이 테이블에서 한 쌍의 커플이 결혼 발표를 한다.", 여기서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멘붕을 경험했다.  뒤늦게 나타난 후보가 너무 강력했고, 그가 가진 아픔과 그녀에게 흔들리는 이유가 너무나 그대로 전달되어 왔으며, 그런 그가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동생인 시원을 통해 이루고 행복해지는 것도 그에게는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윤제는?  시원이는?  태웅이 시원이 언니의 마음을 갖고 시원의 마음까지 갖게 되는 것도 불공평해 보이지만, 반대로 언니를 떠나보내고 시원마저 떠나보내는 것 또한 그에게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결말이 날지 너무 궁금하고 또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모든것이 끝난 지금은 마지막까지 참 "응칠이" 답게, 시청자들 배신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따듯하고 훈훈하게 마무리해줘서 고맙고 만족한다.

 

 

 

  어떤 드라마 제목을 말하면 딱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 명장면이 하나 둘 정도만 있어도 그 드라마는 성공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도대체 매 장면이 명장면이라서 뭘 캡쳐할지도 고민이다.  차라리 다 명장면인데 아쉬원던 몇몇 부분들이 있다면 그걸 캡쳐하는게 빠를 듯 하다.

 

  "그땐 안경을 안써서 이뻐빗는데, 지금은 안경을 써도 이쁘네."

 

  내가 남자인지라 심하게 정은지 위주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그런 은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윤제의 저 표정도 너무 좋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특별할 줄만 알았다.  정말 상상도 못했다.  고작 이런거에 빠지게 될 줄은...."  나도...나도....은지를 사..사...그냥 좋아합니다 ㅠㅠ

 

 

 

  시원은 전날까지만 해도 그렇게 사달라는 청바지 하나 사주지 않는 웬수같은 아빠가 그저 밉기만 했다.  가벼운 사고를 당하고도 사기꾼처럼 아픈척 하며 별의 별 건강검진을 받고 병원구경하고 있는 아빠가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 아빠가 검진 결과 위암이라는 전화를 받고 거짓말같은 현실에 그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한다.  병원으로 오는길에 청바지가 받고싶어 보냈던 아빠가 암에 걸리셨다는 거짓 사연이 1등으로 뽑힌것을 들으면서, 그런 무서운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꾸며냈던 철없던 자신이 미워서, 그리고 아빠한테 너무 미안해서, 이제서야 느껴지는 아빠라는 그 큰 자리를 잃게될까 두려워서 다시 오열한다.  수술실에 들어간 아빠를 기다리면서 엄마는 연습장을 건넨다.  "맨날 죽어라고 싸우더만 지 딸 몽둥이로 맞는건 싫은갑지.  아빠가 니 숙제 해놨다."  자신이 아빠를 팔아서 무서운 거짓 사연을 쓰고 있을때, 아빠가 딸을 위해서 써내려간 고사성어 3000개가 연습장에 빼곡히 쓰여져 있었다.  그 연습장을 한장 한장 넘기며 거기에 담겨있는 아빠의 마음에 시원이는 또 한번 서럽게 오열한다.

 

"삶은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와 뒤통수를 갈긴다."

 

 

 

  이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이 정체불명의 드라마가 주는 깊은 공감과 놀라운 완성도에 뒤통수를 맞은듯 했고, 연기 수업조차 받은적 없다는 (많은 사람들에겐 듣보잡이었던) 정은지가 보여주는 놀라운 오열연기에 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지만 아이유는 3단고음 이후로 누구도 가창력으로 흠잡을 생각하지 않는다.  은지의 3단 오열 이후로 그녀에 대한 연기력 우려나 논란은 완전히 없어졌고 "연기천재"라는 칭찬만이 남았다.  은지가 도전1000곡 논란으로 그렇게 욕을 먹었던 이유도, 연기로는 깔게 없으니 그런 떡밥에 신나게 몰렸던 거라고 생각한다.  뭐 개인적으로는 그게 사과할 일인가 싶지만 어쨌든 은지는 발빠르고 현명하게 사과하며 논란을 잠재웠다.  물론 그 장면만으로는 보기 좋지 않았지만, 그녀를 응원하는 팬 입장에서는 그녀가 말했던대로, 많은 사랑을 받는 만큼 앞으로 말과 행동에 주의해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난 진짜 솔직히, 이전에는 성동일이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성동일이 나온 작품중에 기억에 남는건 "추노" 정도인데, 그마나 거기서도 장혁만 밥값 했을뿐 성동일이 연기한 천지호는 오버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통해서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수술 전 교회에서 난생 처음하는 이 기도 장면에서, 애써 울음을 참으며 볼이 씰룩 씰룩 움직이는걸 보면서 깜짝 놀랬다.  부부로 나오는 이일화의 공중전화 씬도 참 감동적이었다.  이런 베테랑 연기자들이 극의 중심을 든든히 지켜주었기에 정은지나 서인국 같은 신인도 그들을 믿고 다른 걱정 하지 않고 완전히 자기 역할에만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랑, 안하던 짓도 하게 만든다.  유정은 농구를 좋아하는 윤제랑 어울리기 위해 농구책을 펼치고 "바이브레이션"(?)의 의미를 찾아 열공을 한다.  윤제는 HOT 콘서트 티켓을 받으려고 은행 앞에서 밤새 기다리는 시원을 찾아와 함께 하얀 풍선을 흔들며 옆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내가 밸짓을 다한다 밸짓을 다해."

 

  유정은 윤제와 둘이서 농구장 데이트를 하려고 무려 농구경기 티켓 4장과 넥스트 티켓 2장을 준비하고 학찬을 바람잡이로 세운다.  하지만 윤제는 그런 유정의 마음도 모르고 오직 우울해하는 시원이와 그 옆에서 위로해주는 준희만 신경쓰일 뿐이다.  시원이와 가려고 유정이에게 농구티켓 4장을 모두 받은 윤제는 신이 나고, 유정이는 자기 마음을 전혀 몰라주는 윤제가 야속하고 그런 윤제를 위해 노력하고 준비했던 모든것이 부질없이 느껴져 서럽다.  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알고있던 학찬은 유정이 신경쓰인다.  그래서 그도 안하던 짓을 한다.  유정이와 눈도 못 마주치고 버스에서도 늘 멀찍이 떨어져 앉았던 학찬은, 유정이 탄 버스를 멈춰 세우고 옆자리에 앉아 조용히 이어폰을 꽂아주며 수줍게 고백한다.

 

  "농구 말고, 넥스트 말고 너 좋아하는거 하자구."

 

  솔직히 좀 멋있었다.  그리고 그런 학찬에게 정말 쉽게 사랑에 빠져버린 유정.  둘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동창회에서 결혼을 발표하며 결실을 맺는다.

 

  '그러면 시원이는??'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그녀가 임신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자기야 나 딱 한잔만 먹으면 안돼?"라는 애교에 태웅, 윤제, 준희가 동시에 그녀를 만류한다.  이제 이야기는 전반전 결혼할 커플 찾기에서 후반전 시원이 남편 찾기로 넘어간다.(더 얘기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진짜 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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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니 오빠와 같은 대학에 다니는게 소원인 시원은 동국대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윤제는 서울대를 가고도 남아도는 성적에도, 공군사관학교를 지원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릴적 자기 아버지를 보며 제복입은 남자와 결혼을 꿈꾸던 시원을 위한 것이었다.  결국 그의 장래희망은 시원이 곁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윤제 옆에 있기 위해 준희도 함께 공사에 지원한다.

 

  사실 성적소수자에 대한 얘기는 굉장히 민감한 얘기이고, 사람들이 기분좋게 나눌 화제거리도 아니다.  물론 그 사람들 개인의 취향이고 선택이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거부감이 들만한 캐릭터일 수 있었는데, 준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준희는 섬세하고 현명하고 매력적이었으며, 오히려 이루어질 수 없는 그의 짝사랑이 참 안타깝고 아프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긴채 한번도 친구의 경계선을 넘지 않고 좋아하는 친구의 곁에서 항상 그를 지켜주었고, 그가 흔들릴때 그의 마음을 다잡아주었으며, 그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감정을 포기했다.  윤제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준희도 행복해지길 모두 바랬을 것이다.

 

  다른 연기자들 얘기도 하자면, 모두가 잘 했지만, 연기력이나 캐릭터 소화에서 제일 아쉬웠던 인물이 있다면 은지원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을 전혀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보상해낸다.  동창회에서 시원이가 예전에 쓰던 팬픽 얘기를 하다가 그게 멤버들끼리 좋아하고 뽀뽀하고 그런 내용이라고 하니까 발끈해서 "야 그런것 좀 하지마.  실제 멤버들이 보면 그거 얼마나 짜증나고 불편한데." 라며 정색하는 장면이라든가, 뒤에 세븐틴이라는 젝스키스 주연의 영화를 관람하며 "내가 해도 저거보단 낫겠다"며 셀프 디스를 하는 장면들은 은지원이기에 가능한 유머 코드였다.

 

 

 

  김연아는 올림픽을 위해 12년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들도 수능날 D-Day를 위해 12년을 준비했다.  수능이 치뤄지는 그날은 다른 이들에겐 그동안 공부한 결실을 맺기 위한 D-Day였지만, 윤제에게는 드디어 시원에게 고백하려 준비해온 D-Day였다.  그리고 유정이에게는.......학찬이가 자기를 집으로 초대한 날로서의 D-Day였다.

 

  심각한 고민에 빠진 친구의 마음도 모르고 시원은 "역시 잠은 동아가 최고다."라며 신나게 졸고 있다.  시원에게 그날(?)과 그날(?)이 겹쳤음을 토로하는 유정.  "아니면 할라캤나?" 라는 질문에 쑥스럽게 "응....ㅋㅎㅎㅎ"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어찌나 웃긴지, 저게 일부러 한 연기인지 아니면 실제 터진 웃음을 NG 안내려고 필사적으로 참은 것인지 모르겠다.

 

  윤제가 형에게 확실히 이기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스타크래프트였다.  승리의 비결은 정찰.  형의 모든 움직임을 예상하고 정찰하고 대비하는 그는 게임에서 언제나 형을 압도해왔다.

 

  하지만 윤제는 상상도 못했다.  정작 현실에서 형이 누굴 마음에 품고 있는지, 누구에게 고백하려 하는지.  그리고 그 상대가 시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고 형에게 자기도 시원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시원에게 준비한 고백도 하지 못한채 윤제의 D-Day는 처참한 패배의 날로 그의 기억에 남았다.

 

 

 

  수능이 끝나고 자유를 만끽하는 학생들.  시원이와 유정이는 그당시 유행하던 바다, 이의정의 헤어스타일로 머리를 한다.  "이것들 확 바다뿔라", "돈주고 한기가?" 주변인들의 반응은 사못 기대와 달랐다.  그 머리스타일은 그걸 한 사람이 바다이고 이의정이기 때문에 어울렸던 것이지, 너희들은 바다나 이의정이 아니라는 것이 함정이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이지만, 가끔 그당시 상황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도 있다.  특히 위에 장면.  "DSP는 안된다."라며 정색하는 저 장면은 상황을 아는 사람은 배꼽을 잡고 웃었을 장면이고, 모르는 사람은 저게 뭔소리고 할 것이다.  설명하자면, SM에서 나온 HOT의 대 히트 이후로 많은 보이그룹들이 쏟아졌지만, 그중에 라이벌이라고 할만큼 자리잡은 그룹은 젝스키스 뿐이었고, 그 젝스키스의 소속사가 DSP다.  이후 SM에서 원조 요정 걸그룹 SES가 대 히트를 쳤고, 역시 많은 걸그룹들 중에서 그 아성을 위협하던 것은 DSP 소속의 핑클이었다.  SES가 일본 활동으로 국내 활동을 멈춘 사이 핑클은 무섭게 치고 올라왔고 SES를 넘어서는 인기마저 누렸는데, 특히 태웅이가 넋놓고 바라보던 노래 핑클의 "내 남자친구에게"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곡 중간에 "난 니꺼야"하고 핑클이 우리를(?) 가리킬때, 바라보고 있던 모든 남자들도 태웅이처럼 그들을 향해 동시에 "난 니꺼야"를 외치곤 했다.  열혈 토니 빠순이 시원이 입장에서는 라이벌이라고 비교되는 젝스키스도 싫고 그 소속사인 DSP도 싫고 그 회사 출신의 핑클도 당연히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SM에 대한 지조를 지켜 헤어스타일도 SES 바다 머리를 하고, 핑클 보고 헤벨레 하는 태웅오빠의 리모컨을 뺏어 채널을 틀며 "DSP는 안된다."고 정색하는 것이다.

 

 

 

 

  빛바랜 사진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시원 아빠.  그리고 흘러나오는 음악 IOU.  이 장면이 왜 그렇게 감동적인 것일까.  저 사진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우리도 또한 이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화는 광주로 전학온 친구를 방학때 잠깐 찾아온다.  친구는 24번 옷을 입은 남학생에게 고백하고 싶어하지만 혹시 거절당하면 쪽팔리니까 일화에게 연애편지를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24번 옷은 감기 때문에 준혁이가 동일이의 옷을 빌려입었던 것이고, 이 사실을 모르는 일화는 엉뚱하게 동일이에게 친구의 연애편지를 잘못 전달해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일은 그렇게 계속 일화를 마주치다가 그녀에게 반해 사귀자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한편 일화 친구와 그녀가 짝사랑하던 준혁도, 편지 한통 주고받지 못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서로 만나게 되어 수줍게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

 

  원래부터 절친이었던 두 남자와 두 여자.  이렇게 그들은 이젠 두 딸과 두 아들의 부모가 되어 여전히 제일 좋은 친구로 지내며 서로 사돈 맺는건 어떨까 웃으며 미래를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날 윤제 부모님은 머지않아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동일과 일화는 윤제와 태웅도 자녀처럼 돌보며 아이들은 어릴때부터 소꿉친구로 어울려 지낸다.  공부 잘하는 태웅은 송주의 대학 입시를 도와주고, 태웅이를 좋아하던 송주의 적극적인 구애애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송주마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제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빨간 실을 새끼손가락에 묶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 실의 끝은 인연의 상대가 묶고 있는데 그 실타래는 이리 저리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끝을 찾기가 어렵다.  사람의 수 만큼 얽히고 설킨 실 뭉치들.  이걸 풀어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운명의 상대와 마주치게 된다.  정말 인연에 운명의 붉은 실이 존재한다면 지금 나의 붉은 실은 누가 매고 있을까?"

 

  드디어 시원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태웅.  시원은 너무 좋아하고 편하던 오빠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해서 안하던 존댓말로 "지금 대답해야 되요?" 라며 묻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좋은 만남을 가지기로 약속하는 두사람.

 

  한편 윤제는 시원에게 선물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게된 강아지를 준희에게 잘 키워달라고 맡기고.  그 강아지는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결국 시원의 품에 가게 된다.  그리고 시원이는 강아지에게 윤제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애지중지 돌보며 키운다.

 

  윤제에게 걸려있는 인연의 빨간 실을 따라 강아지가 결국 시원에게 가게 된 것일까?  아니면 시원에게 걸려있는 빨간 실을 따라 핸드폰 1번 자리가 태웅에게 가게 된 것일까?

 

 

 

  태웅은 시원에게 고백하고 나서 항상 책상위에 두었던 송주의 사진을 책상 서랍에 넣는다.  아직 잊지 않았고 잊을 수 없는 너이지만, 이젠 너에대한 마음을 내 마음 한구석에 고이 간직하고 이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 한다는 다짐이었다.

 

  태웅과 예전보다 더 좋은 감정으로 조심스럽게 만남을 시작한 시원이.  태웅의 부탁으로 여기 저기 봉투를 찾다가 우연히 서랍속에 언니의 사진과 메모를 보게 된다.  이 장면이 정말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진과 그 메모를 보며 시원은 지금 태웅을 많이 좋아하지만 그 마음이 송주가 태웅을 좋아하던 마음과는 다른 것이라고 어렴풋이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 저 사진과 저 메모에 담긴 마음일 것이라는 것 또한 깨닫는다.  하지만 아직은 자기의 마음이 어떤지 자기도 알지 못한다.

 

  윤제는 형과 사귀기 시작한 시원이 불편하고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 하지만, 시원은 아무것도 모르고 예전처럼 윤제에게 매달리며 장난을 친다.  정색하고 시원을 뿌리치며 다시는 이러지 말라고 얘기하는 윤제.  "가시나 저거 돌대가리 아이가?"  여자들, 참 똑똑하다.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똑똑한 면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어쩔때는 여자들이 진짜 돌대가리 같이 느껴진다.  자기 마음도 자기가 모르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윤제의 마음은 왜, 어떻게 아직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니 듀스 춤 한방이면 가시나들 다 넘어온다" 성재가 노래방에 꼭 준희와 함께 가려는 이유다.

 

  그 듀스 춤이 여기서 드디어 공개되는데...  정말 깜짝 놀랬다.  난 이 신을 보기 전까지 준희 보면서 '신인배우인가본데 어려운 역할 잘 소화하고 있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멋지게 춤을 추는것을 보고 검색해 보았더니, 인피니트 라는 그룹의 호야라는 친구라는 것이다.  이 친구도 아이돌이었다.  워메 세상에나.

 

  아마 정은지가 에이핑크 리드보컬이라는 것을 모르고 신인배우인줄 알았던 사람들도 이 장면에서 내가 호야를 보고 느낀것과 비슷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은지는 노래도 수준급으로 잘한다.  이번에 서인국과 부른 듀엣송도 대박이 났다.  원래 가수인데 연기까지 잘하니, 앞으로도 작품에서 OST도 직접 부르고 연기 대박나고 음원 대박나고 아주 난리나게 생겼다.

 

 

 

  많은 까메오들이 등장했지만, 그중에서도 박지윤 아나운서가 단연 갑이었다.  노래방과 포장마차에서 두번 출연했는데, 만약 응답하라 시즌2를 하거나 다른 부산 드라마가 나온다면 연기자로 나서도 되겠더라.

 

 

 

  준희도 시원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누굴 좋아하냐고 집요하게 물어보는 윤제.  그런 윤제에게 드디어 준희는 처음으로 마음을 고백한다.  "니"  윤제는 잠깐 멍했지만, 이내 "에이 미친놈.  됐어 이 새끼야, 안궁금하다 안궁금해." 라며 장난으로 받아들인다.

 

  "당신이 좋은 이유...그저 그사람이라서...바로 너라서...이것 말고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   차라리 이유를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널 좋아하지 않을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정 피할 수 없다면 원하는건 딱 한가지 뿐이다.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을 사람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가슴시린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위에서도 준희에 대해 잠깐 언급했지만, 민감할 수 있는 역할인데 준희는 결코 불편해 하거나 미워할 수가 없는 캐릭터다.  오히려 그의 가슴아픈 사랑이 안타깝게 느껴지고 그도 그의 행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된다.  또 준희의 시선이나 준희 입장에서의 대사들이 묘하게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데 그런 장면이 이후로도 몇번 더 등장한다.

 

 

 

 

  이 장면은 남자인 내가 봐도 윤제가 참 멋있다.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다는 시원이의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나간다.  한겨울임에도 집에서 입고있던 반팔 셔츠와 머리카락이 땀으로 다 젖었고, 오다가 넘어져서 한쪽 신발은 날아가버리고 팔에서는 피를 흘리고 있다.  숨에 차서 헐떡거리면서도 첫 마디가 늦어서 미안하단다.  그리고 늦게 뭐하고 댕기냐고 마음과는 다르게 화를 냈다가, 이내 다친데 없으면 됐다며 조용히 집까지 바래다준다.

 

  "관계에는 난이도가 있다.  내게 윤제는 그중 가장 쉬운 레벨의 단계..........하지만 이날 아주 어렴풋이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로의 점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난이도 최상의 관계.  바로 남녀관계로 말이다."

 

  고등학교 입학식날 처음으로 윤제가 시원이를 여자로 느낀 것 처럼, 이 날 드디어 시원이도 처음으로 윤제를 남자로 느끼게 된 것이다.

 

 

 

  시원이의 생일에 노래방에서 모두 모인 친구들.  이 밤이 지나면 시원이는 서울로, 그리고 머지않아 학찬이도 하와이로 떠나간다.  시원이, 준희, 성재는 분위기를 띄워보려 하지만, 윤제와 유정이와 학찬이는 각자의 생각에 잠겨 즐겁게 놀 수 없었다.  윤제가 자기 마음을 담아서 부르던 Memories.  그런 윤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원이.

 

 <떠나가도 돼 나를 / 눈물 감추며 날 지켜봐준 그대를 보냈지만

  언제나 널 지켜볼게 이대로 나의 곁에 / 다시 나에게 돌아와줘 언제까지라도>

 

  노래방에 둘만 남게된 윤제와 시원이.  생일선물을 달라는 시원에게 자기 마음을 고백하기 시작하는 윤제.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딱 두 명 있는데.  한명은 우리 형.  나때문에 모든걸 포기한 우리형이고.  다른 한명은 니.  닌데.  우리형이 니가 좋단다.  그것도 마이.  내처럼...  내 어떻게 할까?  어떡하면 좋겠노?  어떡하냐고 가시나야!"

 

  윤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데 성재가 들어온다.  1분 남았는데 노래 안부르고 뭐하냐며 마지막 곡을 선곡하는데...  이 장면에서 정말 소름이 돋았다.  요즘은 노래방에 가서 1분이 남았을 때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 골라서 부르거나 그냥 부르던거 마저 부른다 .  하지만 예전에는, 1분 남으면 부르던 노래 끄고 꼭 다함께 "이젠안녕"을 선곡해서 한소절씩 돌아가며 부르곤 했다.  성재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늘 하던대로 그 노래를 골라서 부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원을 좋아하지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윤제.  윤제의 고백에 혼란스럽지만 지금은 태웅과 만나고 있는 시원.  이 두 사람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고는...한가지 밖에 없었다.

 

 <우리 처음 만났던 어색했던 그 표정 속에 / 서로 말 놓기가 어려워 망설였지만 / 음악 속에 묻혀 지내 온 수많은 나날들이 /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아쉬움 됐네
   이제는 우리가 서로 떠나가야 할 시간 /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서지만 / 시간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 주겠지 / 우리 그때까지 아쉽지만 기다려봐요
   어느 차가웁던 겨울날 작은 방에 모여 / 부르던 그 노랜 이젠 / 기억 속에 묻혀진 작은 노래 됐지만 / 우리들 맘엔 영원히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꺼야 / 함께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 서로 가야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내가 머리가 좀 나쁘다.  니도 알제?  근데 니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친구라는거는 안다.  그래도...내랑 계속 친구는 해줄거지?"

 

  이상하게 마음이 아프고, 지금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시원이도 지금 윤제를 이렇게 잃을수는 없다는 것은 알고있다.  "나랑 계속 친구해줄거지?"  애써 웃음지으며 물어보지만,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다.  저 눈에 고여있는 눈물은 앞서 선보인 오열연기 만큼이나 가슴아프고 슬프게 다가왔다.

 

 

 

  "사내새끼가 짝사랑하는 가시나한테...구질구질하이 여기(가슴) 있는걸 다 털어놨다는거는...  다신 안 볼 생각인기다."

 

  윤제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여있다...  그리고...오래전부터 주고싶었지만 줄 수 없었던...그래서 그저 가지고만 있었던 반지를 건네며 "니가 버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  "친구...지랄하네..."

 

  시원은 윤제가 남기고 간 반지를 바라보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왜 이렇게 심장이 크게 뛰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어디선가 듣고는 있니 너만을 위해 불러왔던 나의 그 노래들을 / 어떨까 너의 기분은 정말 미안해 어쩌면 나처럼 울고 있겠지

  삶이 끝날 때까지 널 만날 순 없지만 / 내버려진 약속 간직하고 싶어

  난 이대로 계속 서 있을게 긴 긴 한숨속에 / 조금은 힘들지만 꿈속에선 볼 수 있잖아
  넌 모른척 그대로 살아가 너의 눈물까지 / 내가 다 흘려 줄게 이런 나의 맘 헤아려만 줘>

                                               - 015B 어디선가 나의 노래를 듣고있을 너에게

 

 

 

  "10대가 질풍노도의 시기인건 아직 정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게 무엇인지.  정말 날 사랑해주는 사람은 누구인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 답을 찾아 이리 쿵 저리 쿵 숱한 시행착오만을 반복하는 시기.  그리고 마지막 순간 기적적으로 이 모든것의 정답을 알아차렸을 때 우린 이미 성인이 되어 크고 작은 이별들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해 겨울 세상은 온통 헤어짐 투성이었다."

 

  서울로 떠나가는 시원이의 손에 끼워진 반지.  달리는 버스와 함께 흘러가는 6년의 세월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처리한 연출은 대박 굿이었다.

 

 

 

  그리고 던져진 초대형 떡밥.  6년만에 우연히 만난 윤제와 시원이.  서로를 돌아보는 장면이 왜 그렇게 좋고 내가 다 설레는지 모르겠다.  저 표정에 담겨있는 수많은 감정들.  현재 내 컴퓨터 바탕화면이기도 하다.

 

  응답하라 훼인이 되면서 한주 한주 기다리는게 참 힘들었지만, 이 떡밥 이후로 기다리는 한주가 가장 길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어색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여자친구 있냐고 물어보는 시원이.  윤제가 대답하기 전에 고개를 살짝 돌리는데 그 모습을 보고 시원은 뜻모를 미소를 짓는다.  마치 윤제가 거짓말 하기 전에 나오는 제스쳐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여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하는 윤제.  시원은 바로 준희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인가 묻는다.  전화하며 윤제를 바라보는 시원의 표정은 난 이미 너에대해 모든걸 알고 있다는 표정이고, 윤제는 불안하기만 하다.  이내 "남자친구 여자친구 할때 그 친구.  너도 그런 친구 하나쯤은 있쟎아?" 라며 횡설수설 둘러대는 윤제.  그런 윤제에게 날리는 시원이의 시원한 한방.

 

  "친구?  지랄하네......"

 

  자그만치 6년을 별의 별 핑계를 대면서 피해다녔는데.  저 한마디에 윤제는 무너져버리고 만다.  다시 예전처럼 그녀 앞에서 가슴이 뛰고 어쩔줄 몰라한다.  "성시원 이 망할년..."  이 한마디에 윤제의 감정이 모두 담겨있다.   그리고 나에게도...정은지 이 망할년........너한테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고!!!

 

  유정의 부친상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된 친구들.  그리고 그날밤 시원이 집에서 함께 얘기를 나누는 두 사람.  시원이 옆에서 사라지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이렇게 영원히 사라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니 지금도 내 좋아하나?" 라고 묻는 시원이.  하지만 윤제는 아직도 형이 좋아하는 시원이에게 이제와서 아직 니가 좋다고 고백할 수도 없고, 이미 자기 마음도 들켜버린 상황에서 더이상 아니라고 거짓말 하지도 못한다.  그저 "다음에...다음에 이야기하자."라며 그 자리를 피한다.

 

 

 

  서울에 올라왔다가 다시 부산으로 향하는 두 사람.  차가 출발할 때 부터 시원이는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닿아있는 곳에, 예전에 그녀가 별 생각 없이 윤제에게 선물했던, 윤제가 형과 시원의 관계를 알고 버리려 했던, 하지만 결국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던 S자가 있었다.

 

  다시 용기내서 지금도 날 좋아하냐고 묻는 시원이.  윤제는 너는 그런걸 왜 묻냐고, 너는 날 좋아하냐고 무심코 물어본다.  그리고 정말 뜻밖에도 그녀가 대답한다.

 

  "응.  내 니 좋다.  친구가 아니라 남자로 좋다."

 

  뜻밖의 고백에 달리던 차를 멈추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윤제.  하지만 예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저 그는 망설이고만 있었다.

 

 

 

  후에 법원으로 찾아온 시원이가 윤제에게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도 몰랐던 죄.  이런 죄는 형량이 얼마나 되노?" 라고 묻는다.  형량은 무기징역.  하지만 그 무기징역은 시원의 형량이 아니라, 그런 시원을 좋아하는 윤제의 형량이었다.  좋아해서는 안되는 사람을 좋아하는 죄로, 평생 창살없는 감방에서 다른 누구도 좋아하지 못하고 이 좋아하는 마음을 없애지도 못하고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아마 자기는 죽을때까지 널 좋아하겠지만 너에게 다가갈 수 없을 것이라고 간접적으로 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시원이 너의 죄값이라며 계산서를 내민다.  시원의 죄값은 고작 설렁탕 한그릇 값이라고 말이다.

 

 

 

  "누구를 좋아하는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야.  가슴이 시키는 거지................살다보면 누가 나를 좋아하고 있는지 모를수도 있다고.  너 아직도 시원이 좋아하지?  그럼 그걸로 이미 게임은 끝이야.............가슴이 시키는대로 해."

 

  준희는 윤제를 위해, 그리고 친구인 시원이를 위해 최고의 조언을 해준다.  굳게 마음을 닫아두려 했던 윤제의 결심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우연히 형의 수술 소식을 알게된 윤제는 병원으로 가서 형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시원이와 진실의 의자에 나란히 앉는다.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두 사람.

 

  "형은 너 아직 기다리는거야."

 

  "안다......하지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신경쓰이는 사람은 너 한사람 뿐이다.  니는?  다른 설명 다 필요 없고 그냥 내 아직 좋아하냐고."

 

  사실 시원도 대답을 이미 알고있다.  윤제가 정말 시원을 아직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6년동안, 그리고 지금도 자기를 피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기가 선물했던 S자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리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말해야 했다.  그래야만 이 사랑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 과감하게 고백한다.  "니 3초안에 대답 안하면 니 볼에 뽀뽀 10번 확 해삔다."  "하나"  "둘"

 

 

 

  그리고 드디어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개인적으로 키스하기 전에 "둘" 할때의 시원이 표정, 키스하고나서 떨어질때 배시시 웃는 시원이의 표정이 너무 좋았다.  감기약을 건네는 시원이도 너무 사랑스러웠고, 그런 시원이에게 다시 다가갈때 윤제의 미소도 좋았다.  이날 밤 많은 사람들이 잠못이루고 배게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알콩달콩 연애를 시작한다.  시원이 프로그램에 게스트가 펑크를 내자 윤제는 재판까지 미루고 와서 대타를 뛰어주고, 시원이의 집앞에서 은근슬쩍 따라 들어가려다가 막히기도 한다.  뽀뽀해달라고 입술을 쭈욱 내민 윤제와 그런 윤제를 귀엽게 바라보는 시원이의 표정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하지만....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누군가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15화는 드라마 전체를 통털어 제일 단순한듯 하면서도 제일 이해하기 어렵다.  적어도 2번 이상은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그걸 이해하고 보면 정말 이해한 만큼 폭풍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중이던 태웅은 우연히 준희와 시원의 전화통화를 듣고, 윤제가 오래전부터 시원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최근에 그들 서로가 다시 키스하며 서로 마음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제서야 그동안 시원이를 피해다니던 윤제의 행동과, 그런 윤제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시원의 태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오래전 시원의 생일에 반지와 열쇠를 주며 고백했을 때 시원의 가슴이 다른 쪽으로 뛰고있다던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마치 6년 전 태웅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때 윤제가 그랬던 것 처럼, 윤제의 마음을 알게된 태웅 또한 큰 충격을 받는다.  태웅, 윤제, 시원은 서로를 생각하며 각자 고민에 빠져든다.  윤제와 시원은 태웅에게 솔직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태웅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민한다.  반면 태웅의 고민은 더욱 깊다.  일단 자신의 사랑을 포기해야 할지 지켜야 할지도 고민이다.  하지만 윤제가 그랬던 것 처럼 자신도 시원을 포기한다면, 단지 형이 시원을 좋아한다고 먼저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원이를 포기하고 힘겹게 피해왔던 윤제가 이전보다 더 큰 죄책감으로 평생 자기를 대할 것이며, 결코 형제사이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시원이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결국 두 사람을 모두 잃게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중 상처입지 않을 한 사람을 택할수도 없다.  두 사람 모두 태웅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으며, 어느 한쪽을 택할수도 없거니와, 둘 중 한 사람을 택한다고 해도 다른 한쪽은 영영 상처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극 중반에 시원이와 준희가 병원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태웅의 이야기가 잠간 나온다.  시원이 태웅을 만나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준희는 "내가 아는 선생님은...." 말끝을 흐리다가, 시원을 보내고 나서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라고 맺는다.  진짜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일에도...사랑에도...

 

  문제의 핵심은 이거다.  과연 태웅이 약속장소를 바꿔서 나갈 결심을 "언제" 한 것이냐.  그리고 "왜" 그런 결정을 한 것이냐...이것이다.

 

  내 결론은, 윤제와 만나기 전에, 시원에게 전화하기 전에 이미 태웅은 시원을 포기하고 장소를 바꿔 나가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물론 내 생각이 틀릴수도 있다...다른 의견이 있다면 제시 바란다..

 

  먼저, 태웅은 시원에게 전화해서 저녁 먹자는 약속을 잡는다.  평상시 말처럼 얘기하려 하지만 목소리에 슬픈 기색을 감출 수 없다.  시원이 "저도 오빠에게 할 말 있어요" 라고 하지만, 무슨 말인지 묻지 않는다.  시원이 하려는(그리고 해야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굉장히 어색하게, "아, 그리고 이쁘게 하고 와라" 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전화씬 내내 이기찬의 "또 한번 사랑은 가고"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송주를 떠나보내고 이제 시원마저 떠나보내는 태웅의 마음...  은사님 딸과 같은날 약속을 잡고,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날 만날 동생을 위해서 "이쁘게 하고 와라"고 덧붙이던 태웅의 마음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다음날 윤제가 태웅을 찾아온다.  커피숍에서 윤제는 아주 어렵게 말을 꺼내려는데, 형은 너도 시원이 좋아하는거 최근에 알게 되었다고 먼저 말한다.  그리고 왜 형에게 얘기 안했냐고 나무란다.  그렇다...그날 윤제가 바로 솔직히 얘기했더라면 문제가 지금 이렇게까지 어려워지지 않았을 것이고, 이토록 오랜 세월동안 세 사람 모두 너무나 힘든 감정의 시간들을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알았다면...나처럼...시원이 포기했어?" 라고 묻는 윤제에게 "아니, 난 포기 안했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동생이지만 그래서 모든건 양보할 수 있지만 여잔 포기 안해."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어서 "형 지금껏 한번도 전력투구한 적 없어.  마지막으로 제대로 대쉬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깨끗이 포기할게.  그정돈 봐줄 수 있지?...........한번 해보자." 라며 선전포고를 한다.  그리고 오늘 저녁 약속 꼭 지키라고 말한다.

 

  태웅이 이미 시원을 포기했다면서 왜 저기서 저렇게 말하냐고?  그것은 조금 있다가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 윤제의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윤제는 형의 반응이 너무나 뜻밖이다.  만약 형이 그동안 혼자 얼마나 마음고생 했냐고 위로한다면, 자기는 괜찮다고, 내가 더 미안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만약, 그동안 자기만 바보된 것이 아니었냐며 이제와서 둘이 그럴수가 있냐며 화를 낸다면 기꺼이 다 받아내고 용서를 구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형은 뜻밖에도 자긴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마지막으로 제대로 대쉬해보겠다고 말한다.  일단은 형을 위해 바로 시원이에 대한 마음을 접었던 자신이 너무 바보같이 느껴지고, 자신과 다른 결정을 내린 형이 많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불안해졌을 것이다.  물론 시원이의 마음은 확인을 했지만, 지금까지 형이 무언가 마음먹어서 실패한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형은 지금까지도 시원이가 스스로 자신에게 올때까지 그저 기다려 왔지, 형 말대로 한번도 전력투구한 적이 없다는 것도 알고있다.  그런 형이 정말 시원이의 마음을 돌려놓을까봐 이제는 걱정이 된다.  한편으론 내가 시원이를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기 시작한다.  6년 전, 형이 시원이를 좋아한다는 그 한마디에 윤제는 시원이에 대한 마음을 접고 6년을 피해왔다.  그만큼 형은 그에게 소중한 하나뿐인 가족이었고, 시원이를 양보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형이 아직도 시원이를, 그때보다 더 이렇게까지 사랑하고 바라고 있다는 것은 새삼 윤제에게 너무나 큰 고민으로 다시 다가온다.  커피숍에서 날이 어두워질 때 까지 꼼짝도 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리고 시원에게 온 "태웅오빠랑 저녁 먹기로 했어"라는 문자에 애꿎은 전화기를 박살내버린다.

 

  치열한 고민을 끝내고 드디어 어떻게 해야할지 결론을 내린 윤제는 약속장소 앞에서 형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말한다.  "형.  나도 포기 안해............수능 보는 날 형이 시원이 좋아한다고, 고백할거라고 그래서 형이니까 1초도 안 망설이고 시원이 바로 접었어.  근데 그게 안돼.  그게 안됐어.  그래도 계속 밀어냈어...............사람 좋아하는 마음이 스위치처럼 켰다가 껐다가 마음대로 안되더라.  한번 켜지면 안꺼져.  나 시원이 좋아해 형.  진심으로 결혼하고 싶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형이지만, 그래서 내 모든걸 양보할 수 있지만, 시원이 포기 안해." 그리고 오늘은 형 체면이 있으니 만나겠지만 다시는 이런 약속 잡지말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약속장소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때......정말 뜻밖에도....그곳엔 시원이가 있었다.  시원이 앞메 마주앉아, 윤제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시원이가 여기에 왜...  형이 약속장소를 바꿨단 말인가?  도대체 언제 그렇게 할 생각을 한거지?  도대체 왜?

 

  그리고 형의 마음을 조금씩 깨달아가기 시작한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형도 이미 시원이를 포기했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그랬던 것 처럼 혼자서 아무 말 없이 포기하고 도망다닐 정도로 형은 비겁하지 않았다는 것을.  형은 자신이 시원이를 포기했다는 이유로 두 사람이 죄책감으로 자기를 예전과 다르게 대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무리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형제이고 가족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포기해서도, 양보해서도 안된다는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내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고, 그런 결의를 가지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을.  만약 그정도 결의도 하지 못하는 사랑이라면 형은 결코 양보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도.  그래서 일부러 자기를 이렇게 고민하게 만들고 그 고민끝에 결론을 내리고 거기에 따를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조금 전 형에게 걸었던 전화.  결국 형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형이지만 시원이는 포기 안해" 라는 말을 자신에게 들어냈다는 것을.  그리고 형이 오늘 약속을 지키라고 하면서 "형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의 딸이야." 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시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비겁했던 자신과는 너무나도 달랐던...자기는 죽어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형의 그 바다같은 마음에 가슴이 아려온다.  그리고 도착한 문자 메시지.

 

 

 

  윤제는 폭포같은 눈물을 쏟아낸다.  형이 왜 미안하단 말인가...정작 미안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인데...6년 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그래도 미안해하는 그 마음이 바로 우리 형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는 더욱 서럽게 오열한다.  이러한 윤제의 눈물은, 성동일의 작은아버지의 사연과 겹쳐지며 정말 엄청난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연기한 서인국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서럽게 오열하면서 핸드폰을 쥔 왼손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정은지가 보여주었던 오열연기 못지않은 디테일한 열연이었다.

 

 

 

  아...어느덧 마지막회까지 왔다.  이렇게 윤제와 시원의 사랑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마지막회 제목이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정말 낚시 떡밥의 제왕다운 제목이다.  아니 그럼 다른 남자랑 결혼시키려 했나?  시청자들 이래 만들어 놓고?  윤제와 시원의 사랑이 깨지는 순간 방송국 유리창도 몇개는 깨질텐데 말이다.

 

  아뭏든, 이제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이 누구에 대한 죄책감도 없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된 두사람.  호프집에서 티격태격 싸우고 시원이의 집 앞에서, 그리고 집 안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이어진 부엌 키스신도 너무 예쁘고 멋있었다.

 

 

 

 

 

  "뭔데? 대답했다 아이가?"  "안다."  "근데 이게 뭐하는 짓꺼리고?"  "그냥 연인들끼리 하는긴데?"

 

  이 커플은 프로포즈도 남달랐다.  굉장히 부끄러운데 안 부끄러운척 하는 정은지의 연기도 좋았고, 그런 시원이에게 키스하러 다가갈때 미소짓는 윤제의 표정도 좋았다.

 

 

 

  이소은 김동률의 <기적> 음악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가며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던 장면들의 답을 보여주던 연출은 너무 훌륭했다.  앞서 시원이의 남편이 분만장면에서 밝혀졌고, 그 출산장면이 많은 연기력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전체 극을 위해서라면 아예 그 신을 삭제하거나 뒤로 미루고 여기서 처음으로 시원이의 남편을 가르쳐 주었더라면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마지막회에 반전이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는데,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전이 있었다.

 

 

  시원이 임신한건 둘째이고, 이미 여섯살이나 된 큰딸이 있었다는 것.  뭐가 그렇게들 급했는지 급하게 아기 낳고 진즉 결혼해서 잘 살고 있었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이 고마운 드라마는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윤태웅은 자신을 수술해주었던 주연과 운명적인 만남 끝에 결혼했고, 준희도 새로운 누군가와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누구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실패했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열정적이고 순수하고 무모해서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런 비극의 한자락 삶의 한켠에 간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성공한다고 해도 익숙해져가는 일상 속에 누구도 자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원이와 윤제처럼) 성공해도 좋다.  함께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나이들어가는 익숙한 설레임도 좋으니까.

 

 

 

 

  이들이 동창회에서 나누던 짧은 대화들 속에는 학창 시절의 추억이 녹아 있었다.  "너네들 그때 왜 싸웠더라?" 그 한마디 안에 시원이와 유정이가 한달동안 왜 말을 안하고 지냈는지, 어떻게 화해하게 됐는지 추억이 담겨있다.  때마침 흘러나오던 윤제의 18번 노래에 그시절 1004가 보낸 삐삐 음악선물에 설레고 잠못들던 추억이 녹아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사진 한장으로 우린 많은 것들을 떠올린다.  시원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이렇게 윤제가 팔이 부러지고 나서 병원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우린 이미 알고있고 그 추억속으로 다시 한번 빠져든다.  그렇게 추억이 지나 현실이 되고, 현실 속의 작은 조각들이 또다시 우리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지막 한 커트가 끝날 때 까지 참 가슴이 따듯한 감동과 재미를 주었던 <응답하라 1997>.  나에게..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역대 최고의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사족 - 내 컴퓨터 바탕화면 아이유에서 정은지로 바뀌었다.  혹시 서운해할지도 모르는 아이유양에게 말하고 싶다.  내...니 싫어진거 아이다.  나도모르게 정은지 이 망할년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온거 우짜겠노 ㅠㅠ 내가 미안타 ㅠㅠ

 

 

 

 (쥔장 -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드라마를 보고 넘쳐나는 감상과 여운을 주체하지 못해 뭔가 개인적으로 남기고 싶어 생전 처음 블로그에 끄적거린 글인데,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함께 나누고 싶어서 쓴 글이니 마음껏 퍼가시기 바랍니다.

출처 : Doulos
글쓴이 : Doulo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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