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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독립운동가]먼저 가신 분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이 땅에서 마음껏 연애하고, 마음껏 행복하십시오.

그리운계절 2009. 3. 23. 13:10

 

 

 

 

 

 

 

 

 

 

 

 

 

 

 

 

 

 

먼저 가신 분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이 땅에서 마음껏 연애하고, 마음껏 행복하십시오.

 

드라마 경스(경성스캔들) 마지막회 엔딩장면에 나왔던 글...

전 이 글을 보면서 그때 당시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이 땅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쓰러져갔는지...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껏 행복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어제 우연히 MBC에서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반환을 요구했던 동생,친구들에게

 일본은 결국 유해를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원래의 일본 감옥법(?)대로라면 오래된 친구,친족,가족이 유해의 반환을

요구할 경우에는 돌려줘야한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는 아직까지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했습니다.

 

 

 

안중근 의사 

 

 

 

 

 

 

 

 

김상옥 [1890∼1923] 대통령장 서훈년도: 1962년

 

·1913년 경북 풍기에서 비밀결사 광복단을 조직
·1920년 암살단을 조직하고 일제 고관 처단 등을 추진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
·1923년 일경과의 전투 끝에 자결 순국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서나 봅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 종로경찰서 폭파 거사를 앞두고 동지들에게 남긴 말 -

 

 

 

손병희 [1861∼1922] 대한민국장 서훈년도: 1962년 

 

·1882년 동학에 입문
·1894년 호서지방 중심 북접(北接)의 통령(統領)에 임명
·1897년 동학의 제3세 교조로 취임
·1907년이후 보성·동덕여학교 등을 통해 민족교육운동 전개
·1919년 3·1독립선언 주도후 체포, 2년의 옥고 여독으로 병사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오"
- 3·1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선생이 거사를 앞두고 다짐한 말 -

 

 

 

 

편강렬 [1890∼1929] 대통령장 서훈년도: 1962년

 

·1907년 이강년의병진의 소집장 겸 선봉장으로 참전
·1919년 황해도에서 군사주비단을 조직
·1923년 의성단 단장으로 의열투쟁 전개
·1924년 체포되어 징역7년을 받고 고문 여독으로 1929년 순국

 

양양한 압록강수는 밤낮으로 흘러가는 곳 어데이뇨
유유한 나의 심사(心思) 너를 따라 거지업다.
흘립천장(屹立千丈) 놉히서기 깁흔 담장안 너 그리워
탄식하는 너의 넷 주인(主人) 나를 네 보느냐
창공에 밝아있는 저 명월(明月) 아- 누구를 위하야서
교교히 빗치였는 철창(鐵窓)에 깁흔 한(恨)은 망국혼(亡國魂)이 늑기워라
언제나 언제나 붉은 담 붉은 옷 버서나 사랑하는 너를 질길소냐?

- 편강렬의사가 신의주 감옥에서 지은 시 -

 

 

 

 

윤봉길 [1908∼1932] 대한민국장 서훈년도: 1962년

 

·1928년 부흥원(復興院)을 세워 농촌개혁 실시
·1930년 중국으로 망명, 백범 김구선생을 만남
·1932년 4월 홍구공원서 폭탄 투척, 일제침략 원흉 처단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孟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 의사가 두 아들에게 보낸 유언 -

 

 

 

 

서 일 [1881∼1921] 독립장 서훈년도: 1962년

 

·1912년 대종교 입교, 북간도일대 의병들을 규합하여 중광단 조직
·1920년 북로군정서(대한군정서) 총재, 대한독립군단 총재 등 역임
·1921년 흑하사변이후 자결 순국

 

『조국광복을 위해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한 동지들을 모두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살아서

 조국과 동포를 대하리오.

차라리 이 목숨을 버려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 선생의 유언 -

 

 

 

 

이봉창 [1900∼1932] 대통령장 서훈년도: 1962년

 

·1931년 상해에서 김구선생과 거사 준비
·1932년 일왕에게 수류탄 투척, 사형 순국

 

『나는 적성(赤誠)으로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 한인애국단 가입 선서문 - 

 

 

 

 

이회영 [1867∼1932] 독립장 서훈년도: 1962년

 

·1907년 신민회 조직
·1911년 교민자치단체 경학사 조직
·1912년 신흥무관학교 설립
·1924년 재(在)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조직
·1932년 일경의 고문에 의해 순국

 

생과 사는 다같이 인생의 일면인데 사를 두려워해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는가.

이루고 못 이루고는 하늘에 맡기고 사명과 의무를 다하려다가 죽는 것이 얼마나 떳떳하고 가치있는가.

- 선생이 남긴 말 - 

 

 

 

 

남자현 [1872∼1933] 대통령장 서훈년도: 1962년

 

·1925년 조선총독(齊藤實) 주살시도
·1932년 국제연맹조사단에 독립호소(하얼빈)
·1933년 주만일국전권대사(武藤信義) 주살기도
·1933. 8월 순국

 

“만일 너의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면 너의 자손에게 똑같은 유언(遺言)을 하여

 내가 남긴 돈을 독립축하금(獨立祝賀金)으로 바치도록 하라.”

- 여사의 유언 - 

 

 

 

 

 

남궁억 [1863∼1939] 독립장 서훈년도: 1977년

 

·1896년 독립협회 창립
·1907년 대한협회 창립, 회장역임
·1912년 배화학당 교사 및 상동청년원장
·1933년 비밀결사 「십자가당」을 조직, 옥고치룸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 1907년 4월 20일 종로 YMCA 강당에서 행한 “生存競爭”이라는 제하의 연설문 속에서 - 

 

 

 

장진홍 [1895∼1930] 독립장 서훈년도: 1962년

 

·1918년 광복단 활동하다 만주로 망명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의거
·1930년 옥중 순국(대구 형무소)

“너희들 일본제국이 한국을 빨리 독립시켜 주지 않으면 너희들이 멸망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내 육체는 네 놈들의 손에 죽는다 하더라도

 나의 영혼은 한국의 독립과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위하여 지하에 가서라도 싸우고야 말겠다.”

- 사형이 확정 된후 옥중에서 작성한 총독 제등에게 보내는 서한문 중 - 

 

 

 

박상진 [1884∼1921] 독립장 서훈년도: 1963년

 

·1912년 대구에서 상덕태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의 거점 마련
·1915년 조선국권회복단 참여, 대한광복회 총사령
·1917년 친일 부호배 처단 및 군자금 모집 활동 등 의열투쟁 전개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사형 순국

 

오인(吾人)은 대한독립광복(大韓獨立光復)을 위하여 오인의 생명을 희생에 공(供)함은 물론,

오인이 일생의 목적을 달성치 못할 시는 자자(子子) 손손(孫孫)이 계승하여

수적(讐敵) 일본을 완전 구축하고 국권을 회복할 때까지 절대 불변하고 결심 육력(戮力)할 것을

천지신명에게 서고(誓告)함.

- 1915년 선생이 주도한 대한광복회의 결의문 -

 

 

 

 

김창숙 [1879~1962] 대한민국장 서훈년도: 1962년

 

● 1919. 파리강화회의에 파리장서 제출
● 1919-1925. 임시의정원 교통위원 및 부의장역임
● 1925. 독립군 기지건설을 위한 군자금 모집
● 1928. 징역 14년 수형

 

나는 대한 사람으로 일본 법률을 부인한다.
일본 법률론자에게 변호를 위탁한다면 대의에 모순되는 일이다.
나는 포로다. 포로로서 구차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치욕이다.
결코 내 지조를 바꾸어 남에게 변호를

위탁하여 살기를 구하지않는다.


- 대구형무소 옥중투쟁에서 (1928년) -

 

 

 

이윤재 [1888~1943] 독립장 서훈년도: 1962년 

 

1919 평북 영변에서 3 1만세운동 참가
1929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 집행위원
1931∼1934 한글강습회 개최, 한글보급
1942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피체
1943 고문으로 옥중 순국

 

우리는 꼭 바라고 나아갈 희망 한 가지가 있다. 그를 여기에서
기다랗게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를 리 없다.

이 희망만은 어느때 까지든지 꼭 이루고야 말리라는 것까지도 잘 안다.
우리는 이 희망을 이루면 잘 살고, 이루지 못하면 잘 살지 못할것까지도 안다.

(중략) 오늘부터 우리가 전민족적으로 대방침을세우고 대계획을 정하자.

그리하여 너니 나니 가리지 말고 오직한 깃발 아래 모여서

 저기 보이는 한 목표를 향하여 서로 손목잡고 나아가자.

이것이 이 신년에 정할 조선 민족의 만전지계라부르짖는다.


- 1927년 원단(元旦)에 선생이 신년의 희망을 밝힌 글 중에서ㅡ (『동광』 제9호, 1927. 1) -

 

 

 

 

홍범식 [1871∼1910] 독립장 서훈년도: 1962년 

 

○1907∼1910 태인군수, 금산군수
○1910 경술국치에 통분하여 순절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없고

망국노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어 스스로 순국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구나.

피치 못해 가는 길이니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하던지 조선사람으로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빼앗긴 나라를 기어이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

- 선생이 아들에게 남긴 유서 중에서(1910. 8. 29) -

 

 

 

오성술 [1884∼1910] 독립장 서훈년도: 1977년 

 

○ 1907 용진산에서 거의
김태원 의진에 참여, 간부로 활동
○ 1908∼1909 의병장으로 광주·나주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 부일배 처단
○ 1910 피체되어 사형·순국

 

내 평생 시름없는 사람이라 자위했건만
나라의 운명이 어려워져 그 걱정뿐이네.
술 속의 취기는 밤낮이 없건만
글 속에 대의는 춘추를 지녔구나.
집안이 기울어도 천금 부자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붓을 내던지니 오직 백성 시중들 생각만 하네.
세상살이에 마음속 일을 알기 어렵지만
분노 그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生平自謂我無愁 天步艱難是可憂
酒褒微 罔晝夜 書中大義有春秋
傾家不顧千金富 投筆唯思萬戶候
處世難知心內事 慨然此外更何求

- 선생이 의병활동 중 읊은 시 -

 

 

 

송학선 [1897∼1927] 독립장 서훈년도: 1962년

 

○ 1926 사이토 총독 처단 기도
○ 1927 사형 순국

 

나는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

다만, 우리 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 번 죽어도 마땅하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총독을 못 죽인 것이 저승에 가서도 한이 되겠다.

- 선생의 법정 진술 중에서(1926. 7) -

 

 

 

 

 

 

 

이달의 독립운동가들을 연도별로 쭉 보면 거의다 사형 순국 또는 고문여독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2MB도 정말 싫지만 저렇게 훌륭하신 분들을 괴롭힌 일본도 정말 밉네요..

위안부문제,독도문제 등까지 정말...................

 

소드분들 시간되시면 mbc 안중근의사의거 100주년 특별기획 "안중근의사 북위 38도" 꼭 한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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