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문국현은 CEO 출신이 아니다.
지난...지인들에게 보낸 메일을 읽어보다가..좋은내용 있길래..발취해서..자게판에.올려봅니다..
우리나라에는 ‘재벌’이란 특이한 족속이 있다.
재벌의 영어권 표기는 'chaebol'이다.
우리 발음을 옮겨 쓴 것이다. 마땅히 번역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재벌체제가 한국의 특수한 현상임을 세계가 공인하고 있는 셈이다.
공개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chaebol'이 복합기업들(conglomerates)을 칭하는 한국어라고 하면서도,
가족이 지배하는 한국의 기업집단을 일컫기도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브리태니커>는 다각화를 추구하면서도 자금. 인사. 경영면에서 일관된 체재 아래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복합기업과는 성격을 달리한다고 적고 있다.
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경영인, 또는 전문경영인은, 외국에선 어떤지 모르지만
한국에선 재벌보다 분명 아래에 위치한다.
CEO를 영입하거나 길러내는 것은 대부분 재벌들의 의지에 의해 정해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최고경영인이란 말보다는 전문경영인이란 말을 주로 쓰는 것이다.
최고는 늘 재벌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문국현은 유한이 길러낸 경영인이 맞고, 킴벌리 클라크에 의해 완성된 전문경영인이 맞다.
문국현이 유한킴벌리에 계속 남아 있었으면 그 말에 이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를 나와 대선에 출마했고,
그 뒤 그가 보여준 행보를 보며 이젠 그의 경력 자체도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유한의 경영을 맡으며 했던 일들은 거의 모두 기업의 환경을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기계를 줄인 것, 4조2교대제라는 근무방식, 기업의 판공비와 비자금을 없앤 것,
골프회원권을 팔아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콘도 이용권으로 바꾼 것 등등.
이로 인해 때로는 간부들과도 다퉜고 노조의 반대에도 부딪쳤다.
하지만 그는 끈질기게 그들을 설득했고 마침내 유한킴벌리를 지금의 세계적 기업으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기업환경을 새로이 디자인한 디자이너, 또는 기업환경변화를 이루어 낸 운동가라고나 할까.
그는 대선출마 후에도 같은 방식을 고집했다.
모두가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심지어는 측근들까지 새벽에 술을 먹고 집에 쳐들어오는 무례를 행하면서
단일화를 압박해도 끝내 굽히지 않았다.
민노당에 대해서도, 참여정부에 대해서도 시종일관 같은 태도를 유지했고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측근들이나 지지자들은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을지 모르나 그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람중심’ ‘진짜경제’ ‘가치창조’ 등 그가 주장한 모토들은 일관되게 한 곳에 맞춰져 있었다.
바로 기존의 정치판에 대한 새로운 디자인, 정치 환경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해, 신당과 정동영에 대해서도 정치는 국민을 감동시켜야 한다.
그렇게는 국민이 감동하지 않는다, 며 시종일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그의 고집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정치를 모른다거나 너무 이상주의자라는 등,
이런 장면들은 그가 유한의 경영을 맡았을 때 나왔던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대부분은 회의적이었고 소수의 지지자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아마 유한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대부분은 비판적이고 소수만 열광하는 힘겨운 변화.
마침내 선거 결과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유권자의 극소수만이 그에게 표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바꾸고자 하는 정치의 변화는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유한의 경영에 비유하자면 이제 겨우 골프회원권을 팔아 콘도이용권으로 바꾼 단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기존의 정치권 모두를 재벌이라고 가정하자. 현 정치권에는 유일한도 없고 유한양행도 없다.
때문에 기존의 정치 환경을 바꾸려면 창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힘겨운 길이지만 그 외에는 없다. 그리고 겨우 한 발을 내딛었다.
아직은 실패나 성공을 말 할 단계가 아니다. 소득이라면, 모두가 그를 의식하고 예의 주시하게 됐다는 것.
그러나, 사실 이것은 성공이다.
성공도 매우 큰 성공이다.
선거기간 내내 다른 유력후보들은 물론 유권자들에게 가장 큰 이슈를 던진 공약은 문국현의 것이었다.
모두 그의 공약을 주시했고 패러디하기에 급급했다.
만약 지금의 환경이 아닌 그가 꿈꾸는 정치 환경하에서 대선을 치렀다면 당선자는 분명 문국현이었을 것이다.
또한 선거가 끝난 후 그의 팬클럽에는 오히려 더 많은 가입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결집력 또한 대선 전보다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다.
현역의원 한명, 더구나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 한명밖에 없으며
대선이후 휴식을 취하며 거의 개점휴업상태인 창조한국당에 정치권은 시선을 놓지 않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이미 바닥에서부터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통합신당을 보자.
그들은 대선실패의 원인을 스스로 돌아보기는커녕 각 계파가 그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미래에 대한 담론 설정과 가치의 재설정은커녕 분열의 소용돌이만 더 커지고 있다.
심지어는 분열할 힘조차도 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들이 갈 곳을 모를 정도로 방황하게 된 것은 모두 문국현과 창조한국당 때문이다.
기존 정치판과 차별을 두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모두 문국현이 선점해 버린 것이다.
문국현이 없었다면 그들이 그 가치를 만들 수 있었을까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어쨌든 결과는 그렇게 된 것이다.
이는 민주노동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선 후유증으로 치열한 노선투쟁을 벌이며 재정비를 하고자 하지만 앞길은 희미하기만 하다.
그들 역시 가고자 하는 길의 대부분을 문국현과 창조한국당에 선점당해 버린 것이다.
그들이 늘 말하는 대로 문국현은 이제 겨우 정치입문 넉 달 지난 초짜 신인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의 앞날을 예시하려면 그를 통해야만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문국현과 창조한국당은 침묵 중이다.
그가 비판해 마지않던 가짜경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부동산이 들썩이고
그의 전공분야중 하나인 환경을 파괴할 게 명백한 대운하 얘기가 오르내림에도
그와 창조한국당은 일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이런 형태의 침묵 역시 기존의 정치권에서는 본 적 없었다.
문국현과 당은 정말 패자로서 할 말이 없어서 그러는 것일까?
만약 문국현이 지금의 침묵을 깨고 창조한국당을 기존의 정당과는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끌어 갈 로드맵을 짜 나온다면,
그리고 대선 때와 같은 일관된 고집으로 반대자들을 설득하고 18대 총선에 임한다면
그가 추구하는 정치변화는 분명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드디어 4조2교대의 시작이라고나 할까.
이미 문국현의 정치디자인은 시작되었고 적용되어 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단순한 CEO가 아닌 것이다.
단순히 경영인으로만은 그가 밟아온 모든 경력과 운동을 설명할 수 없다.
그는 CEO라기 보다 기업의 환경을 바꾸고 정치 환경을 바꾸고,
나아가 나라의 현실과 미래까지 바꾸고자 하는,
전 방위적인 디자이너이며 환경운동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