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펌) 이명박 정부, 뛰어봐야 노무현 손바닥
출처는 양정철닷컴(http://yangjungchul.com/158)입니다
큰 차 꺾는 것도 이리 어려운데 국가를 함부로 유턴하는 게 쉬운 일인지 압니까.
‘ABR’이란 말을 기억하십니까. ‘Anything But Roh’의 약자입니다. 즉 ‘노무현만 아니면 뭐든지…’ ‘노무현 흔적은 뭐든지…’를 뜻합니다. 현 정부 출범 초 이명박 대통령이 취한 정책방향은 그게 뭐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반대로 가려했다는 의미입니다. 철학이나 정책방향을 떠나, 전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적대감-열등감에서 뭐든 반대로 가고자 했던 이 정권의 편협함과 협량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 부작용의 한 사례를 보겠습니다. 지난 4월21일은 과학의 날이었습니다. 여러 언론들은 과학인들이 한결같이 “과학의 날이 서글프다”는 반응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정부 들어 과학기술 분야가 얼마나 홀대 받았는지, 과학인들은 다 압니다. 그 출발은 참여정부 흔적 지우기 차원에서 시작한 과학기술부 폐지였습니다. 과기부가 과거 교육부에 흡수 통합되면서 과학기술 정책은 심하게 뒷걸음질 쳤습니다.
여러 폐해와 비효율이 드러나자 이명박 정부는 3년을 버틴 끝에 입장을 선회해야 했습니다. 차마 과기부를 부활시키진 못하고, 상설위원회로서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래봐야 예산 편성권을 갖고 있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눈 가리고 아웅’입니다. 참여정부 흔적 지우기 차원에서 과기부 폐지를 단행했다가 부작용이 크니 기껏 내놓은 방안이, 참여정부가 할 때는 욕설을 퍼부었던 ‘위원회 남발’ 방식으로 간 겁니다.
이건 하나의 변형적 사례에 불과합니다. 이명박 정권이 없앴던 정부나 청와대 조직들은 거의 참여정부 시절로 모두 돌아갔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시나브로…. ‘ABR’(Anything But Roh)로 기세 좋게 시작한 정권이 ‘RTR’(Return To Roh)로 꼬리를 내린 꼴입니다. 청와대는 엊그제, 대통령 한방주치의까지 부활시켰습니다. 참여정부 때 처음 신설한 자리를 없앤지 3년2개월만입니다.
뛰어봐야 벼룩이고, 뛰어봐야 노무현 대통령 손바닥 안입니다.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는 차원에서 그 궤적을 정리해 놓고자 합니다.
1. 이명박 청와대야, 노무현 청와대야?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작지만 효율적인 청와대’를 표방했습니다. 참여정부 청와대 조직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정책실장, 홍보수석, 인사수석, 시민사회수석 조직과 직제를 폐지했습니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조직은 3실 8수석, 2보좌관이었는데, 그걸 이명박 청와대는 1실 7수석 체제로 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지 아십니까. 그 동안 모두 세 차례 조직개편을 거치면서 2실 8수석, 4기획관, 1보좌관으로 확대됐습니다.
규모는 참여정부 때보다 더 커지고, 실제 조직체계는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조직과 거의 똑같이 원상회복했습니다.
정상 체중인데도 다이어트 한답시고 무리하게 호들갑을 떨며 다이어트 하다가 요요현상이 와, 이전보다 체중이 더 늘어난 꼴입니다. 하나씩 살펴보시지요.
○ 정책실장 폐지 ⊂ 정책실장 부활(2009. 9.) : 정책실장 직제는 참여정부 때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필요 없다고 없앴습니다. 세계 경제위기를 겪고 난 후에야 필요성을 깨닫고 부활시켜 경제팀을 총괄케 하고 있습니다.
○ 인사수석 폐지 ⊂ 인사기획관 명칭으로 부활(2009. 9.) : 인사수석 직제도 참여정부 때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필요 없다고 없앴습니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임자가 스폰서 논란으로 낙마한 후에야 인사추천과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며 부활시켰습니다. 현재 인사기획관은 참여정부 때 인사수석과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합니다.
○ 홍보수석 폐지 ⊂ 홍보수석 부활 (2009. 9.) : 홍보수석(대변인 별도) 직제도 참여정부 때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이전엔 대변인 기능을 겸한 공보수석 체제였습니다. 필요 없다고 없앴습니다. 촛불시위를 계기로,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며 부활시켰습니다.
○ 시민사회수석 폐지 ⊂ 사회통합수석으로 부활 (2008. 6) : 시민사회수석 직제도 참여정부 때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필요 없다고 없앴습니다. 잇단 선거 패배 이후 다양한 세대-계층과의 소통을 강화한다며 부활시켰습니다. 현재 사회통합수석은 참여정부 때 시민사회수석과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합니다.
○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및 위기관리센터 폐지 ⊂ 국가위기관리실 및 위기관리비서관으로 부활 :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및 위기관리센터도 참여정부 때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필요 없다고 없애거나 축소했습니다. 금강산 피격사건, 천안함 사건 등을 겪으면서 위기관리 기능을 강화한다며 부활시켰습니다. 현재 국가위기관리실 및 위기관리비서관은 참여정부 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및 위기관리센터와 이름만 다를 뿐 기능이나 직제는 거의 동일합니다. 참여정부 시스템을 폐지했다가 국가위기상황 대처조직이 없어 대응능력이 부족했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한 후에야 다급히 참여정부 안보시스템을 다시 복원한 겁니다.
2. 정부조직 역시 기능은 다시 ‘노무현시대’로
이명박 정부는 정부조직 역시, 참여정부의 틀을 심사숙고 없이 모두 때려 부수고 뜯어고쳤습니다. 그러나 정부조직에서도 기능적 체제는 노무현 정부와 유사한 구조로 다시 되돌렸습니다. 다만 정부조직 개편의 경우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어, 틀보다 기능 위주로 회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기능조차 복구하지 못하는 부분은 현재 심각한 폐단을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 과학기술부 폐지 ⊂ 장관급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전환해 복귀(2010. 9.) : 과학계, 국책연구기관 등에서 과학기술부 폐지로 미래성장 동력이 고갈되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됐습니다. 과학기술정책의 컨트롤타워가 없어져 연구예산 삭감, 전략적 장기연구 중단 등으로 과학 실종상태가 초래됐다는 비판여론이 비등했습니다. 그래서 과기부 대신 만든 것이 상설위원회로서의 장관급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출범입니다.
○ 여성가족부, 여성부로 축소 ⊂ 여성가족부로 복귀(2010. 3.) : 여성가족부는 참여정부 때 처음으로 확대돼 형태를 갖춘 부처입니다. 그런 여성가족부를 여성부로 축소했습니다. 청소년 가족 업무는 보건복지가족부로 이관했습니다. 그러다 청소년 가족 업무를 다시 가져온 여성가족부로 원상 복귀했습니다.
○ 보건복지부, 보건복지가족부로 확대 ⊂ 보건복지부로 복귀(2010. 3.) : 여성가족부가 맡았던 가족, 청소년 업무를 가져왔다가 내놓으면서 이전 모습 그대로로 돌아갔습니다.
○ 현재의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참여정부 시절에 이미 짜놓은 형태(방송위원회+정보통신부) 그대로입니다. 당시엔 상상조차 못했던 ‘방송장악’에 용이한 못된 행태로 운용만 달리 하고 있을 뿐입니다.
○ 국정홍보처도 ‘언론장악-언론탄압의 나쁜 기능을 수행해 왔다’며 폐지했습니다. 지금 언론장악-언론탄압은 이명박 정부가 하고 있습니다. 홍보처는 없앴지만 정부광고비, 정책홍보 예산은 참여정부 때와는 비교도 안 될 규모로 커졌습니다.
따라서 정부조직 통폐합으로 온전히 사라진 것은 해양수산부 정도인 셈입니다.
결국 조직 폐지 또는 통폐합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거나 이로 인해 다시 ‘원상복귀’한 조직은 한둘이 아닙니다.
아예 원상복귀 못한 부문(IT산업 등)은 경쟁력 약화와 효율성 저하로 표류하고 있습니다. 해체, 폐지, 통합이 지고의 가치인 듯 내세웠지만 사실은 노무현 대통령과 반대로만 가려다가 국정운영의 총체적 난국을 자초한 꼴입니다.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사가 ‘반노무현’으로 출발했습니다. 지금 심각한 민심이반을 겪고 있는 사안(신공항, 과학벨트, 세종시, 공공기관 이전 등)은 하나 같이 참여정부가 이미 매듭지은 사안을 섣불리 뒤집거나 건들다 생긴 문제들입니다.
하다못해 전쟁이라도 벌일 듯 쌍심지를 켜던 대북 기조조차도 북에게 사과 한 마디 못 들은 채 출구전략을 찾는답시고 슬그머니 대화기조로 전환하는 중입니다.
국가운영은 감정이나 기분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걸릴 뿐, 그래봐야 역사의 상식으로 오게 돼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뛰어봐야 벼룩이요, 아무리 몸부림쳐봐도 노무현 대통령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원칙과 상식으로 일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