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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큐] 난징 대학살 2부-진실게임: 우리가 역사를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는 이유 (2)

그리운계절 2011. 6. 17. 09:18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486071 난징 대학살 1부-잊혀진 홀로코스트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486084 난징 대학살 1부-잊혀진 홀로코스트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486213  난징 대학살 2부- 진실 게임

 

 

 

 

 

난징 학살의 증거가 될만한 사진을 찍어서 사진집을 출간한 사람인 무라세 모리야쓰씨입니다.

 

 

 

당시 그는 현장의 사진들을 찍는 일을 맡게 되었고,

그는 그 사진들을 편지에 넣어 부인에게 보냈는데,

그것이 현재 난징 대학살을 증명하는 사진들이었습니다.

 

 

그는 종전 후, 그 사진들을 직접 추려서 중국전 기록 사진집을 출간하였습니다.

 

 

그는 그 사진들을 찍으며 꼼꼼하게 기록도 남겼었죠.

 

 

그는 양쯔강의 사진에 대해 이런 기록도 남겼습니다.

 

 

 

넓은 강변 가득 시체가 매장되어 있었다. 시체로 이루어진 산도 있었다.
군복을 입은 자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평복을 입은 민간인으로 부인과 아이들이 섞여 잇었다.

시체에 기름을 부어 태운 까닭에 검게 그을린 시체가 많았고, 그 썩는 냄새로 숨을 쉴 수 조차 없었다.

강에서는 한 부대가 시체를 강으로 운반해 떠내려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방법이라면 한두달은 걸릴것 같았다.

 

 

 

그의 사진집 출판은 용기있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위험한 출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사진에 얽힌 이야기들을 아내에게도 많이 들려줬는데,

한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아흔이 넘은 그의 아내는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용기있는 증언에도 불구하고

대학살 부정파들은 또하나의 사진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위의 사진에서 일본군인들은 모두 여름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부정파들은 당시는 12월, 겨울이었으므로 옷차림이 맞지 않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따라서 그 당시의 사진이 아니었다는 주장이었죠.

 

그런데...

 

제작진이 직접 만난 한 난징전 참전자가 난징에서의 일을 무용담처럼 말하던 도중,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즉, 사진 속 군인들의 옷차림은 오류가 아니었던 거죠.

 

물론 모든 사진이 옳았던 것은 아닙니다.

 

부정파들을 비판하는 인정파 학자들 조차도 중국에서 주장하는 사진들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구요.

 

 

 

 

 

근거가 불분명한 사진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에서 떼어낸 사진도 있었죠.

 

출처가 정확하지 않는 사진들이 선전용으로 이용되었고

난징이 아닌 곳에서 벌어진 잔혹한 행위의 사진이 난징의 사진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진들은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근거 사진으로 이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몇몇의 사진에 오류가 있었으므로  난징 대학살도 없었던 일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이었죠.

 

 

 

그리하여 난징 대학살에 대한 일본내의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 "난징의 강간" 출간 이후에 보여진 부정파들의 움직임은

난징 대학살 사건에 대한 일본의 역사 인식에 치명적인 후퇴를 가지고 왔다는 것이 일본 역사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사실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부정론은 이미 학문적으로 패배한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의 우경화 움직임 속에서

부정론은 대중적 지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한 전반적인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자민당입니다.

그중에서도 100여명이 참여한 역사 검토 위원회가 주축이었죠.

 

 

 

이타가키 타다시 의원은 그러한 움직임이

패전 후 잃어버린 일본 역사의 자긍심을 찾는 작업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그는 종전 후 A급 전범으로 처형당했던 이타가키 세이시로의 아들입니다.

 

 

난징 대학살의 부정론은 도쿄 재판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연합국이 패전국인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전쟁중 범죄 혐의를 덮어 씌웠다는 것이었죠.

 

 

연합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단죄된 도쿄재판은 일본군을 처단하기 위해 날조된 것이라는 주장이 도쿄재판 부정론입니다.

 

 

난징 대학살 부정론은 이러한 역사 인식의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가해자로써가 아닌 피해자로써의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일본.

 

 

 

일본의 난징대학살 부정론자들은 "난징의 강간"의 오류를 과대하게 비판하여

학문적으로 패배한 부정론을 부활시키는 기회로 이용하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역사 인식의 배후에 일본 정부가 있으며,

겉과 속이 다른 역사 정책으로 이러한 역사 인식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합니다.

 

 

 

부정론자들이 주축이 된 새역모에서 만든 교과서에서는

난징 대학살이 난징 사건이라는 명칭으로 축소되어 표현되고 있으며,

아직도 논쟁중이라는 문구로 마치 난징 대학살이 없었던 사건이라는 뉘앙스마저 풍기고 있습니다.

 

 

 

 

 

"역사 교과서는 그 나라의 집단적 기억의 총체다.

무엇보다 역사 교과서는 정치권력과 시민사회가 어떻게 과거를 해석하고

그를 통하여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일본의 오늘은 주변국들에게 큰 우려를 사고 있다.

 

조만간 난징 대학살에 대한 정설조차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역사 전문가들의 조심스런 견해이다.

 

난징 대학살 부정파들의 목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일본의 오늘이 있다."

 

2부의 마지막 나레이션 中

 

 

3부 예고긔

 

 

읽어주셔서 감사하긔.

출처 : 소울드레서 (SoulDresser)
글쓴이 : 노세노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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