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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광해군] ‘두 얼굴의 왕’ 광해는 실제 명군이었나 폭군이었나 ②

그리운계절 2014. 9. 21. 23:20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708173 기사 1탄 올린거긔

 

 

1980년대 이후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으로 변했다. 연산군과 달리 '폭군'이란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성군으로 보기엔 무리"라는 의견도 다시 대두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실정군주' 광해군을 보자.

 

 

 

 

형제를 죽이고 어머니를 유폐시키고

 

**중략

 

광해군은 앞에서 이야기했듯 서자 출신이다. 세자는 물론 왕에 오르기까지 쉽지 않은 행보를 했다. 막판엔 세자자리도 뺏길 운명이었다. 그만큼 정통성이 약하다. 그의 정적들, 특히 서인들은 이 정통성으로 끝까지 광해군을 괴롭혔다.

조선왕조실록엔 광해군은 형인 임해군이나 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는데 매우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끝까지 이를 윤허하지 않았다. 대북파 신료들의 계속된 요구도 묵살했다. 하지만 결과는 역사 그대로 형제들이 죽은 것이다. 임해군은 사사됐고 영창대군은 끓어오르는 방안에서 죽었다. 인목대비는 유폐됐다. 직간접적으로 광해군은 연관이 될 수 밖에 없다.

임해군이야 세자경쟁에서도 일찌감치 탈락한 후보 (성품이 너무 포악했다)였지만 영창대군은 그렇지 않았다. 선조의 뒤늦은 적자인데다 이를 지지하는 재야세력들이 만만치 않다. 안그래도 중립외교로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는터라 광해군에게 영창대군이란 존재는 두려울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일부에선 대북파의 독선적인 행보였다는 주장도 하고있다. 광해군의 정치기반이던 대북파가 이후 오히려 광해군의 왕권을 위협했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또 미약한 왕권 강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현실도 고려해야한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있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는 인조반정의 명분이 됐다. 형제들을 무참히 죽이고 어머니를 유폐시킨 폐륜아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서인들의 반란의 이유가 됐다.

 

 

국력 낭비한 대규모 건축사업..민심은 떠났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불타없어진 궁궐들을 재건했다. 하지만 단기간 내에 너무 많은 토목공사를 진행하다보니 이에 따르는 부작용도 컸다. 창경궁을 비롯해 4개의 궁궐을 다시 지은 광해군이다. 궁궐공사는 국가적인 대 사업이다. 이런 사업을 4개씩이나 일으켰다. 가뜩이나 전쟁 후로 피폐해진 국가 경제가 견딜만한 수준이 아닌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 농민들에게 부역을 시키니 민심 배반도 늘어났다.

사료를 바라보면 광해군이 쏟아지는 상소에도 궁궐 재건을 연이어 실시한 이유는 '미신' 때문이다. 회괴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니 이 궁궐에선 못살겠다란 이유다. 창경궁 이후 궁궐도 이렇게 지어졌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대규모 건설사업을 벌여 국가 경제 활동성을 늘였다는 것이다. 건설사업에 필요한 물품들의 거래가 늘어나고 이를 통한 상공업이 흥해진다는 분석이다. 또 당시 한양엔 전쟁으로 집을 잃은 백성들이 모여들었고 광해군이 공사를 통해 이들에게 먹거리를 보장했다는 평가도 있다. 어찌됐든 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을 먹고 재우는 일은 나라가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구걸로 연명하는 빈민들을 공사에 이용해 이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했다는 긍정적 시선이다.

하지만 국가재정의 10~15%에 달하는 돈을 퍼부은 점은 장점보단 단점이 더 많은 듯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또 향후 이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벼슬을 파는 일이 벌어지고 공사대금을 빼돌리는 벼슬아치가 생기는 듯 민폐가 상당했다.

*중략

 

광해군은...

예전엔 폭군 중 폭군으로 다음엔 개혁군주이자 천재적인 외교가로, 광해군은 변해갔다. 이제는 "권력을 위해 형제와 가족을 제거했으며 대규모 토목공사로 안그래도 어려운 나라와 백성들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라는 반대 여론도 다시 생겨났다. 또 여기에 "골육상쟁은 조선초 자주 일어난 일이고 왕권이 미약한 광해군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궁궐공사가 무리한 측면도 있었으나 여러 장점도 있었다. 불만을 품었던 양반들이 반정 후 광해군을 악의적으로 역사에 기록했다"고 반발하기도 한다.

그가 명군이었는지 아니면 폭군이었는지는 누군가의 말처럼 "바라보기 나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광해군만큼 현대사회에 투영돼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는 역사 인물은 흔치 않다는 점이다. 광해군이 보여준 외교역량이 현대에 들어 더 인정을 받게된 점, 대규모 토목공사 부작용에 대한 강한 반감 등 역시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피부로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며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옛날엔 그랬다"가 아니라 "지금"도 바라볼 수 있는 사람. 그러기에 '광해'는 여전히 논란이며 여전히 살아숨쉬는 인물인 셈이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9251423380810

 

아까는 광해를 명군으로 보는 이유에 대한 기사를 퍼왔고

이번에는 광해를 폭군으로 보는 이유에 관한 기사를 가져왔긔. 링크 타고 가셔서 전문 읽어보시긔~!

기자가 깔끔하게 정리를 잘 해 놓은거 같아요~잘 읽히긔

 

 

 

 

출처 : 소울드레서 (SoulDresser)
글쓴이 : 비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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