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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현정, 그녀를 위한 변명

그리운계절 2008. 5. 11. 22:57
고현정, 그녀를 위한 변명
[경향신문 2003-11-24 16:27]

#풍경1. 3년전 강남의 한 레스토랑

시부모와 시누이, 남편과 함께 식사하는 그녀. 학처럼 꼿꼿하게 앉아 거의 새 모이 먹듯 조금씩 식사를 한다. 다들 자연스럽게 대화하는데 누구도 그녀에게 말을 시키지 않는다. 명품으로 감싸고 있지만 마치 투명인간 같다.

#풍경2. 올 봄 어린이 요리교실

어린 남매를 데리고온 그녀. ‘이렇게 귀엽고 예쁜 애들이 내 아이들이에요’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그녀가 맡았던 그 어느 배역보다 당당한 모습. 아이들 옆에 서있는 보모들.

#풍경3. 올 가을 허름한 고깃집

늦은 저녁. 왜 이 시간에 이런 허름한 고깃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까 하는 의문. 역시 먼저 인사를 하지만 허허롭고 슬퍼 보인다.

고현정의 돌연한 이혼에 재벌가에 시집간 한 보통집안 출신 여성은 한숨 쉬며 말한다.

“그래도 오래 참은 거예요, 8년반이면. 그 심정 너무 잘 알아요. 명문대를 나왔는데도 시어머니는 제게 ‘하류출신’이라고 했죠. 다른 동서들이 ‘형님, 우리 아빠가 형님 아빠랑 어제 골프쳤대’라거나 남편 친구 부부들의 ‘우리 유학시절에 갔던 거기’란 대화에 전혀 끼여들지 못할 때, 영어나 불어로 대화할 때 ‘아, 대한민국은 계급사회구나’ 하고 절감하죠. 연예계 톱스타였어도 재벌가에선 그저 매스컴에만 오르내리는 귀찮고 짜증나는 ‘딴따라’ 출신 정도의 존재였을 거예요. 그들은 절대로 이종(異種)교배를 원치 않아요.”

결혼 후 그는 요리학원에도 다니고 미술관련 강좌도 들었다. 시아버지 출근 때 배웅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남편이 외국손님들을 집으로 많이 초대하는데 영어실력이 부족하다며 미국 어학연수를 떠났고, 국내 대학원에도 합격했지만 입학하지 못했다. 남편 가족과 동화되기 위해, 이른바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그녀가 노력했다는 것은 주변사람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재벌가의 사람들과도


친구가 되지 못했다. 거리에만 나가도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하는 그녀와 맘 편히 만날 상류층이 있을까. 한 재벌 며느리는 노골적으로 “연예인 출신이 우리 그룹에 참가하는 것은 모욕적이다”라고 말했단다.

결혼 후 얼마동안 그녀는 항상 보디가드들의 경호를 받았다. 은근히 그녀의 스캔들을 기대하는 선정적 언론들이 언제나 그녀 곁을 맴돌았다. 시장에 가도 극장에 가도 그녀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카메라와 집요한 시선 때문에 찡그린 표정 한번 자연스럽게 지을 수 없었다. 20대의 피끓는 열정을 그는 견고한 성 안, 항상 감시카메라가 켜진 듯한 성에서 안어울리는 옷을 입고 지내야 했다.

그녀의 한 연예계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함께 저녁 먹고 집에 갔는데 온집에 촛불을 켜더라구요. 남편이 사업에 바빠 늦게 오니 너무 외로워서 촛불을 켤 때가 많다고요. 다이애나가 떠올랐어요. 화려한 왕관과 황태자비란 타이틀보다 사랑에 목말라 갈등하고 평범한 생활을 바랐던….”

겨우 서른두살의 그녀에게 ‘외제차 타고 명품 갖는 재미로 참지, 뭘 다 가지려 하나’ ‘밤에 왜 술취해 다니느냐’고 나무랄 수 있을까. 드라마에선 어떤 역할도 잘 소화해내는 그녀였지만 실생활에선 ‘신데렐라’ 역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게 그녀의 연기력이나 인내심 부족 때문이었을까.

평소 그녀는 아이 사랑이 끔찍했단다. 자신의 호칭도 아무개 엄마였다. 아이 생일파티를 준비하며 일일이 아이 친구집에 전화를 걸던 보통엄마였다. 그런 그녀가 이혼으로 양육권을 포기했다. 알려진 위자료는 15억원. 그녀가 8년간 계속 연예활동을 했다면 얻었을 소득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액수. 어쩌면 그녀는 이제 편히 숨쉴 수 있어 더 행복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위자료, 자유로움도 매일 밤 아이들을 포근히 껴안고 잠들 수 없는 그녀의 허허로움이나 상처를 치유해주진 못할 게다.

출처 : 스칼렛 요한슨
글쓴이 : 부엌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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