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라

[스크랩] 노무현 전 대통령과 베레고보와 전 프랑스 수상의 자살

그리운계절 2009. 5. 27. 17:16

노무현 전직 대통령의 자살 소식은 들끓는 한국 정치 현실에 찬물을 끼얹는, 사실 비현실로 느껴질 정도로 한국 정치권 코드에서 동떨어진 사건이다. 그러나 정치인의 자살은 결코 단순하거나 외톨이 사건이지 않기에 그 자체가 하나의 미스터리이고, 모든 숨겨진 비밀을 지닌 사건이 그렇듯이 하나의 신화로 발전한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1993년 수상직을 물러난 지 두 달 후에 자살한 미테랑 대통령 시절의 프랑스의 전직 수상 삐에르 베레고보와의 사건과 너무 닮아, 이 사건의 현재까지의 전모, 그에 대한 프랑스 언론 및 정치계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은 여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1925년 생인 베레고보와는 어려운 이민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중학교만을 마친 후 15세부터 노동을 시작했고, 42년엔 프랑스 국립철도회사에 들어가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다. 49년부터 정치활동을 시작해 81년 미테랑 대통령의 측근이 되기까지 각종 좌파 활동과 사회운동을 했다.

82년에서 91년 사이 사회복지부를 거쳐 장기간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으며, 이 기간에 현실과 타협하여 자유시장원리를 이해한 좌파 정치인으로 우파의 신임을 얻는 반면 좌파 동지들로부터는 경원시되었다. 91년에서 93년 3월 사이엔 인기가 땅에 떨어진 에디뜨 크레송 수상의 뒤를 이어 드디어 수상직에 올랐고, 이 기간에 차기 사회당의 대선주자를 꿈꾸기도 한 프랑스 정치 하이어라키의 최정상을 맛보았다.

- 엘리트가 배척한 프랑스판 자수성가 정치인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자수성가 정치인의 뒷면에는 차가운 현실이 놓여있었다. 한국보다 훨씬 폐쇄적인 엘리트 교육제도가 있고 그 국가 엘리트들이 거의 좌우 정권의 요직을 차지하는 프랑스 현실 속에서 노동자, 노동권 출신의 촌스럽고 가난한 베레고보와의 정치적 성공은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엘리트 중에도 특권 엘리트만이 차지하는 재정경제부 장관 (사르코지 현 대통령도 재경부 장관을 거쳐 대권주자가 되었다)을 장기간 지내다니.

그의 스타일과 행적은 즉시 정치개그와 캐리커처가 심한 프랑스 텔리비전의 인형극에서 매일매일의 양식이 되었다. 잘난 상류층 엘리트들이 이러한 미디어의 입담을 웃어 넘길 수 있는 반면 (미테랑 대통령이나 시라크 대통령이 이 케이스이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이에 신경이 쓰이고 못마땅한 법이다. 현 사르코지 대통령도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고, 부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던 베레고보와는 더욱 그랬다고 한다.

베레고보와는 수상시절 국회의 부패청산에 앞장섰는데, 이 과정에서 뇌물수수자의 명단이 있다고 국회에서 위협하는 등, 과도한 제스츄어를 취해 적지않은 적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가 미테랑 대통령의 측근이 관계한 고위 행정부패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지목되어 수상직을 물러나고, 곧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됐다. 이 과정에서 그가 재경부 장관에 취임하며 구입한 집을 사는데 사업자인 친구가 무이자로 자금을 빌려준 사건, 공짜로 여름 휴가를 즐긴 것 등이 드러나 심한 정신적인 부담을 안고 신경불안 증세도 보였다.

그는 결국 경호원의 권총을 몰래 숨겨 자신이 시장인 파리 외곽도시의 한적한 강가에서 자살을 했다. 그러나 탄도와 검시 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점, 유서가 없는 점, 두발의 총탄 발사, 그가 발설하면 안될 정보를 너무 많이 지녔다는 사실 등을 들어 타살설이 최근까지 지속되는 사정이다.

프랑스 공영방송은 올해 5월1일 그의 자살 16주년인 노동절 휴일 저녁에 (그는 그의 일생에 상징적인 노동절 행사를 마친 후 자살했다) 베레고보와 수상의 최후 10년을 재현한 픽션과 심층다큐를 방송함으로써 프랑스가 그를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픽션물 속에서 베레고보와는 정직하고 부패하지 않은 곧은 정치인, 그러나 인간적인 약점을 지닌 존경할만한 사람으로 그려졌다.

- 16년 지나도 프랑스가 잊지 않아

이렇게 요약된 베레고보와의 삶과 죽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와 너무도 유사한 것이 많다. 그들은 전반적인 정치권 엘리트로부터 소외된 경력, 노동권 활동, 소탈한 일상생활, 부패척결에 앞장선 점, 그리고 미디어와 관계에서 유사한 고통을 겪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에 이어진 프랑스 시민들의 인터넷 댓글 중에는 한국발 공식정보원의 발표를 반복하는 기사의 지나친 순진성을 경고하는 글, 마도프 같은 사기꾼이 제집에서 편히 잠을 자는 한편, 아시아의 정치인들 중에는 이에 비교할 수 없는 작은 사건들도 공식적인 사과나 자살의 이유가 되는 도덕성이 아직 살아있다고, 그의 자살에 겸허한 예를 표하는 글이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쉽게 잊혀지지 않고 정치인들의 머리 위에 매달린 칼로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란다.

홍석경 프랑스 보르도대 신문방송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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