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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위클리경향] 문국현 "이미 발생한 미래 국민과 젊은 세대에 알릴 것”

그리운계절 2011. 3. 18. 21:34

[신동호가 만난 사람]“이미 발생한 미래 국민과 젊은 세대에 알릴 것”

2010 12/07위클리경향 903호
ㆍ‘사람중심 창조경영’ 표준화 나선 문국현 뉴패러다임인스티튜트 대표이사

뜻밖이었다. 한때 대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장의 CEO였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130만 표가 넘는 지지를 얻은 정치인답지 않았다. 현 정권의 1인자뿐 아니라 ‘2인자’와 비장하게 대결했던 결기도 보이지 않았다. 잘 나가던 CEO 타이틀도, 각광받는 정치지도자 이미지도 모두 벗어던진 소박한 모습이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뉴패러다임인스티튜트는 비영리민간기구(NPO)가 아닌 주식회사다.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는 달랑 6명이 근무하는 이 ‘회사’의 대표이사다. 명함에 적힌 사명 아래 ‘녹색·책임 경쟁력 연구소’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연구소 같은데 기업이고, 기업인데 연구소 같은 게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1월 22일 뉴패러다임인스티튜트 사무실을 찾아 문 대표를 만났다. 정권의 1·2인자와 맞짱을 떴다가 그 정권 아래서 의원직 박탈과 10년간 피선거권 제한이라는 ‘정치적 최고형’을 당한 사람으로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및 경제 운영 등에 대해 할 말이 많지 않을까 해서다.

예상한 대로 그는 많은 말을 했다. 뜻밖인 것은 그 내용이 기대한 바가 아니라 엉뚱한 데 있었다. 그의 생각은 다른 데 있었다. 아니, 원래의 생각 그대로인데 기자가 엉뚱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의원직을 잃고 당 대표직까지 내놓은 뒤 주로 미국에 체류한 걸로 압니다만….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영국·중국, 이렇게 4개국에 주로 오래 있었어요. 피터 드러커 탄생 100주년 기념 펠로로서 미국을 주 근거지로 활동했습니다. 드러커경영대학원이나 드러커경영연구원을 비롯한 미국·영국의 경영대학원들과 협력해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한 거죠. 특히 중국 경제인 단체 가운데 드러커를 추종하는 경영자 협회가 있는데 그곳을 통해 ‘사람중심, 창조경영’이라는, 이른바 뉴패러다임 경영을 보급해 달라고 해서 중국에 한 다섯 번 갔습니다.”

드러커 교수와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까.
“아주 많죠. 그분의 책에 나오는 이론을 경영에 많이 도입했거든요. 그분이 주로 21세기 지식경영을 얘기했기 때문에 저하고 잘 맞았죠. 직접적인 인연은 2004~2005년 국가 고문직 수락 여부를 타진할 때 여러 번 연락을 하고 찾아뵈었던 것이고요. 돌아가시기 1년 반부터 6개월 전까지는 자주 연락을 했어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문 대표를 비롯한 세계 많은 기업인의 멘토라고 할 만하다. 문 대표가 주창한 ‘뉴패러다임 경영’도 드러커의 경영철학에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결합한 것이다. 물적 투자나 일 중심이 아니라 인적 투자나 일과 삶의 조화를 꾀하는 경영방식이다. 이를테면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근무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고 남는 시간을 평생학습에 활용하는 것이다. 문 대표는 이 방식으로 1997년 IMF사태 등의 위기를 극복한 바 있다.

정치인에서 경제인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군요. 그 시작을 뉴패러다임인스티튜트 설립으로 삼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국가경쟁력위원장 시절에 만든 뉴패러다임센터라는 게 있어요. 그게 지난해 말에 없어진다고 해서 걱정하던 차에 마침 국회의원직을 내놓게 되었죠.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품고 싸우는 것보다 그걸 계속 국가사업으로 유지·확장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올 초에 시작했습니다. 거기 근무하던 분들이 그만두거나 각 기관으로 흩어졌는데 여건이 되는 대로 영입을 할 생각도 있고요.”

문 대표가 말하는 국가경쟁력위원회의 당시 정식 이름은 사람입국신경쟁력특별위원회였다. ‘사람입국’이라는 말이 들어간 명칭만 보아서도 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조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설비나 소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뜻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입국’이란 말이 어색하고 쓸데없이 저항을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빼자고 했어요. 저는 그 말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고요. 실제로 저항이 많더라고요. 6년이 지난 지금은 서울 강남구도 ‘사람중심구’라고 하고, 여기저기서 그 말을 경쟁적으로 쓰잖아요. 그때는 수출입국처럼 사람입국을 하자는 말이 아주 생소하게 들렸던 거예요.”

뉴패러다임인스티튜트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중국 경제를 ‘육체경제’에서 ‘지식경제’로 바꿔가기를 원하는 그룹이 있어요. 그들과 일하는 게 가장 큰 부분입니다. 제가 중국에 다섯 번 강연을 갔는데 매번 800여명의 경제인이 모여요. 첫날은 이들을 대상으로 일반적인 지식경영에 대해 얘기하고, 둘째날은 3시간에서 6시간의 워크숍을 합니다. 셋째날은 기업을 방문해서 같이 토론을 하죠. 한국에 와서 두 달간 변화관리 전문가 양성과정을 밟는 프로그램도 있고요. 내년에는 회원이 1만명이 넘는 중국 경제인 단체와 합자회사를 설립할 겁니다.”

문 대표는 뉴패러다임 경영의 세계 표준화도 꾀하고 있다. 품질경영(ISO 9000), 환경경영(ISO 14000), 사회책임경영(ISO 26000)에 이은 새로운 경영 표준을 미국 드러커경영대학원, MIT 슬론경영대학원, 캐나다 토론토대 로트먼경영대학원 등과 추진한다는 것이다.
“일과 가정과 사회의 통합 내지는 균형, 현재와 미래의 균형 내지는 통합, 그래서 미래에 대한 기술과 용역을 끊임없이 엮어가는 학습조직으로 만드는 것이죠. 이에 대한 세계 표준 운동이 미국·캐나다·중국 등지에서 일고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 표준인 ISO 26000처럼 1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이루어지리라고 봅니다.”

뉴패러다임 경영이 왜 필요한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십시오.
“국내 어떤 기업은 작년에 50조원을 넘게 팔았는데 올해는 미래가 안 보이는 터널 속에 들어가 있잖아요. 100조원 가까이 파는 노키아도 2008년을 기점으로 꺾였단 말이에요. 지금의 기술, 지금의 성공 모델에 집착한 결과입니다. 자기가 보고 자란 게 건설뿐이니까 임기 동안 건설만 한다, 이런 사람도 있잖아요. 그건 정말 위험하죠.”

처음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 나왔다. 문 대표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재임할 때 서울숲 조성이나 청계천 복원사업 등을 함께 한 전력이 있다. 그의 눈에 비친 이 대통령의 모습이 궁금했다.

서울시장 시절 이 대통령은 문 대표와 좋은 관계였지 않습니까.
“저희가 10년 가까이 해온 그린웨이 운동의 일환으로 학교숲과 마을숲을 많이 만들었어요. 노을공원도 성공하고요. 특히 뚝섬 경마장을 용도변경해서 오늘날의 숲공원으로 만드는 데 합의하고 그걸 바탕으로 운영마저도 시가 아니라 다영역 간의 협력체에서 담당하는, 한국에서는 신기원에 해당하는 모델을 만들었죠. 거기까지는 잘 갔는데 2006년 말 대운하 얘기가 나오면서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졌어요. 저희는 도저히 같이 갈 수 없게 된 거죠.”

이 대통령이 집권 후 서울시장 시절과는 어떻게 다르게 비칩니까.
“독단적이죠. 서울시장 시절에는 설령 마음속으로는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고친 게 여러 가지 있었어요. 실제 대화를 중요시했지만 그 이후에는 대화보다는 효율이 먼저인 것 같아요.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일부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뒤바뀌거나 변질되면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겠죠. 그 이유가 뭐든 간에 옛날만큼의 유연함이라든가 실용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가장 비실용적인 분들이 가지고 있는 태도와 이미지를 많이 쌓아놓은 게 사실이죠. 참 놀라운 변화죠.”

대선 당시 국민은 경제대통령을 원했죠. 똑같이 기업인 출신인데 이 대통령과 문 대표가 표방한 경제정책 기조는 전혀 달랐지 않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그분은 당시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 멤버가 아니었어요. 저는 세계경제포럼 멤버로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금융위기와 부동산 거품의 붕괴 위기를 우려하고 대비하는 입장이었죠. 

2007년 1월 다보스에 모여서 논의한 핵심 주제이기도 했거든요. 반면 이명박 후보는 기업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으니까 기업인 출신이 더 이상 아니었잖아요. 세계경제포럼에 서울시장 자격으로 한번은 가셨지만 세계 경제의 흐름이 급격히 바뀌는 것을 정책화하기 어려웠다고 봅니다. 그 주변에 계시는 분들이 전부 다 20세기 산업국가의 모델을 많이 주장했던 분들이기도 하고요.”

결정적인 차이는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입장차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볼 때 대운하는 경제적·금융적 재앙이기도 했거든요. 환경적 재앙과 문화적 재앙은 당연히 많은 사람이 걱정하지만 말이에요. 그 부분을 부각하다 보니까 사이가 멀어졌고, 일부 언론에서 계속 이 후보가 당선되면 손볼 사람 0순위라고 가십으로 만평으로 만화로 막 나니까 참으로 어려웠죠.”

문 대표는 대선이 있던 해인 2007년 3월 유한킴벌리의 이사회 회장 겸 CEO에 다시 선출됐다. 하지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대운하 저지 및 전 세계적인 금융·부동산 위기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대선에 출마하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잃었는데, 후회스럽지 않습니까.
“70세, 80세까지 갈지도 모를 직장을 조기에 나온 아쉬움은 있지만 대운하는 막았잖아요. 대운하 비슷한 것은 지금 진행되고 있지만….”

4대강 사업이 경제적으로는 어떤 문제가 있다고 봅니까.
“엄청난 비효율이 있죠. 지금은 ‘스마트’한 데 돈을 쓸 때인데 4대강 사업은 스마트한 국가 운영이 아니에요. 스마트한 건 사람을 이용하는 겁니다. 지금 20%도 활용되지 않는 우리 국민의 역량을 40%, 80%까지 끌어올리는 거죠. 톱다운(하향식) 방식에 의한 한국 경제를 톱다운과 바틈업(상향식)이 결합된 통합 스마트 시스템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통합 스마트 시스템으로 가려면 결국 정부의 모든 정책 우선순위를 20세기 산업국가에서 하던 전략에서 동북아 시대, 스마트 경영, 창조경영 시대 쪽으로 가야죠.”

대외적인 여건에 비해 현 정부가 경제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용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리먼브라더스가 부도가 나기 며칠 전까지도 그 길이 옳다고 막 밀고 나갔던, 그야말로 어이없는 정책을 이끌어간 정권이에요. 정말 아슬아슬했죠. 온 국민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스릴을 맛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피해자로 고생했습니까. 자꾸 글로벌 메가트렌드에서 어긋나는 쪽으로 가는 일은 빨리 바로잡아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도 수출이라든가 몇 가지 경제지표를 보면 나아진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양극화의 양면을 안 보고 어느 한쪽으로 몰려 있는 부를 보고 얘기하는 것이에요. 예를 들면 환율이 800원대였던 것이 현재 1125원 정도에 있는데, 국가경쟁력이 높아졌으면 800원대에 있어야 되죠. 일반 가정의 입장에서 보면 구매력이 과거보다 325원만큼 즉, 40% 가량 절하된 거거든요. 자살률을 보세요. 두 배로 늘어났잖아요. 산업체 비정규직 숫자를 보세요. 대졸 취업자 월급 수준을 보세요. 무엇이 좋아졌다는 거예요. 그것은 (<동물농장>에 나오는) 나폴레옹 같은 승자들끼리의 얘기인 겁니다.”

이 대목에서 문 대표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말이 빨라졌다. 목소리도 조금 높아졌다. 중소기업·서민의 고통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에 대한 우려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뭔가 우리가 잘 가고 있는 것 같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독일하고 비교해보시고 중국하고 비교해보시고 20년의 어려움 속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는 일본을 보십시오. 브라질 같은 데는 빼놓더라도 말이죠.”

정치적으로 화려한 위치에 있다가 일개 시민으로 돌아온 그의 답답한 심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다음 말로 자신의 이런 심사를 뒤집었다.

“공인의 역할을 내려놓고 1년간 마음껏 세계를 돌아다녔더니 젊어진 느낌이에요. 다시 20대 후반으로 돌아간 기분인 거죠. 20대 후반에는 얼마나 꿈이 많아요. 에너지도 많고… 그러니까 행복할 권리가 있는 우리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양극화 대신에 배려와 신뢰의 좋은 바이러스가 확대되기를 정말 기대하게 됩니다. 아, 이 운동만은 내가 놓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 대표는 인터뷰 후 이어지는 일정을 소개했다. 대학생, 기업인, 외국인 등과의 토론회가 그의 다음 일정을 채우고 있었다.

“토론회에 가면 또 젊어져요. 완전히 20대 후반에서 30대의 이야기들이에요. 유럽이나 미국의 토론장에서는 한국 얘기가 그 중에 1%도 안 되거든요. 우리가 평상시 모르고 있던 국제정세나 국제적인 메가트렌드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드러커가 얘기한 ‘이미 발생한 미래’가 생각나요. 집안에 갇혀 있어서 창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미 발생한 미래를 우리가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을 빨리 국민한테, 젊은 세대에게 알려야지, 이런 생각이 저를 굉장히 힘나게 합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출처 : 문국현과 함께하는 대한사람 들
글쓴이 : crommoo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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