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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사전] 대호군 장영실, 그는 왜 사라졌나? (한층 더 허접해지고 찌질해진 개드립이 난무하는 발편집. 스압&bgm)

그리운계절 2014. 9. 21. 23:30

 

* 문제시 댓글로 달아주세요

 

 

 

 

 


한국사전 2008.07.12

대호군 장영실, 그는 왜 사라졌나?

 

 

 

 

 

 

 

 

 

 

 

 

 


그날의 사건은 단지 우연이었을까?
정말로 그의 실수였을까?

 

장영실의 감독 아래

문제의 가마가 완성된 것은 1442년 3월

 


 

 

세종이 이용할 가마였다
그런데 시험운전을 하던 날 어이없게도 가마가 부서져 버렸다

첨단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든 장영실의 실수로 보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사건이었다

 

 


가마 사건 직후 장영실은 왜 역사의 무대에서 돌연 사라진 것일까?

 

 

 

 

-

 

 

 

 

 

 

600년전 장영실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킨 유물이 복원되어 있다

 

 

 

 

 

 


높이 6미터의 거대한 자격루


세종실록을 바탕으로 복원한 장영실의 자격루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시보장치 아래는 12지신 동물인형이 설치되어 있는데

매 시간마다 각기 다른 인형이 튀어나와 시간을 알려준다

 

장영실이 자격루를 개발했을 당시

이같은 자동시계의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중국아라비아 단 두나라 뿐이었다

 


자격루 개발로 조선은 세계에서 3번째최첨단 자동시계 기술 보유국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장영실은 언제 어떻게

이런 자동시보장치 시계를 개발한 것일까?

 

 

 

-

 

 

1421년

 


 

 

 

 관노 신분의 장영실이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기회가 찾아온다
세종의 부름을 받고 내감에 들어서자 두명의 관리가 있었다

 

 

 

 

 

 

 


세종이 천문과학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장영실을 불러들인것이다

 

 


이 자리에서 장영실에게 내린 세종의 특명은 더욱  파격적이다

 

 

 

 

 


"너희들이 중국에 가서

각종 천문기구들을 눈에 익히고 돌아오도록 하여라"

 

 


장영실로선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중국 유학이었다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세종이 장영실의 중국 유학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천문관측기구가 있다

 

 

 

 

 


 


거대한 혼천의는 과거 세계 천문과학을 주도하던 중국 자부심의 상징이다
장영실이 북경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은 세계적인 천문과학기술 보유국이었다

 

 


북경 고관상대는 명나라 때 중국의 국립천문대 역할을 하던 곳이다
돌꼐단을 따라 고관상대 2층으로 올라가면 고대 천문관측기구들이 설치되어있다

 

 

 

 

 

 

 

지금은 관광 유적으로 개방해 놓아 관람료만 내면 누구나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장영실이 북경유학에 올랐을 때에는 목숨을 걸지 않으면 접근 할 수 없는 곳이었다

 

 


명나라의 법률과 풍속을정리해놓은 야획편이라는 기록에 그 이유가 나와있다
명나라의 천문학에 대한 규정은 놀랍도록 엄격하다 

 

 

 

 

 

 

 


하늘의 비밀을 밝히는 천문학은 황제의 영역이었고

 관상대는 황제의 명에 따라 관리되는 통제구역이었다
관상대를 관리하던 흠천감 역시 외부인이 드나들 수 없는 보안구역이었다
흠천감에 근무하는 관리들의 외부활동도 철저한 규제대상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달려온 중국 유학길
그러나 장영실은 명나라 관상대 안으로는 한발짝도 들여놓을수 없는 처지였다
그토록 보고싶었던 관상대를 눈앞에 두고도 돌아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빈 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그나마 북경의 서점가는 장영실에게 신천지와 같은 곳이었다

 

 

 

 

 


명나라 때 생긴 북경의 유리창 거리

지금도 옛 책을 파는 서점들이 즐비하다

당시 북경서점가는 장영실의 갈증을 풀어줄 국제 문명의 창구였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다양한 정보가 교류됐다
중국의 전통 서적은 물론 유럽과 아라비아의 선진과학 문명을 소개하는 책도 나와있었다
장영실은 서점가를 돌며 물시계천문관측기구에 관한 책을 구입하고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

 

 

 

 

 

 

 

 

 

 


장영실이 귀국한 것은 이듬해인 1422년

 

 

 

 


이때부터 새로운 물시계의 제작에 매달린다
장영실이 탄생시킨 첫 작품은 경점지기 라는 물시계다
귀국후 2년만에 완성한 경점지기는

그동안 써오던 물시계를 계량해 보다 정밀하게 만든것이다
하지만 경점지기는 사람의 힘을 빌려야했다

 

 

 

 

 

청동으로 만든 세개의 항아리와 파이프 모양의 긴 물통만 남아있는데

 이것이 전통적인 물시계의 핵심 부품이다

 

 

 


 

 

 

 

 

그러다 보니 담당자의 실수로 시간을 잘못 알려

처벌 받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확한 시간을 알려줄 수 있는 새로운 시계가 필요했다


장영실에게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시간을 알려주는 새로운 물시계
자격루 개발은 그렇게 시작됐다

 

 

 

 

 

 

원천 기술 이전 없이 자동 물시계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고난이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자격루 개발에 매달린 기간만 십여년

오랜 연구와 실험 끝에 장영실은 자동시보장치 기술을 개발했다


자동시보장치의 핵심은 매 시간마다 정해진 구슬을 떨어지도록 하는 것과 그 구슬이
지렛대를 움직여 원하는 장치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세종 실록 보루각기에는 자격루 작동원리가 상세하게 적혀있다

 

 

 

 

↖자격루의 물이 흘러내리며 생기는 힘으로 구슬을 떨어트리는 동통장치(사진의 왼쪽)와

시간을 알리며 종이나 북을 치는 시보장치(사진의 오른쪽)↗

 

 

 

 

 

 

 

 

 

 

 

자격루는 간단한 원리에서 출발한다
물시계장치의 힘으로 작은 구슬이 굴러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국의 과학자 조셉 니덤(죠니뎁 아님)

천상시계라는 저서에서 자격루에 상당부분 지면을 할애했다

 

 

 

 


자격루의 독창성을 인정한 니덤은

 스트라이킹 클렙시드라 라는 학명까지 부여했다

 

 

장영실이 자격루를 완성한 것은 1434년
한달 간에 걸친  성능시험도 무사히 마쳤다

세종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격루는 경복궁 보루각에 설치됐다
그리고 그 해 7월 1일을 기해 조선의 국가 표준시계로 지정 했다

 

세종은 진심으로 장영실이 아니면 자격루를 만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자동물시계 개발로 장영실은 세종의 이상을 구현하는 위대한 손으로 거듭났다

 

 

 

 

-

 

 

 


중국 유학 당시 관노 신분이었던 장영실은

자격루를 개발한 직후 정4품인 호군으로 승진한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
장영실은 어떤 과정을 거쳐 노예에서 대호군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것일까?

언제 어떻게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난 것일까?

 

 

 

장영실이 궁중기술자로 첫 발을 내딛은 것은 1412년

이는 태종 임금때로 실록에 나와있다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세종 실록에는 장영실의 아버지가 원나라 소항주 사람이고

 어머니는 기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9세기에 제작된 아산장씨세보

여기에는 장영실의 선조가 송나라때 고려로 건너와 귀화한 것으로 되어있다

 

 


 


 

 

 

 

고려말 - 조선 초기에는

원나라 기술자들을 기녀와 결혼 시켜 정착하게 만드는 귀화정책을 펼쳤다

 

 

 

 

 

장영실의 어머니는 동래 관비였다
아버지의 지위에 관계 없이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야 하는 것이 조선의 신분법이었다

관기의 몸에서 태어난 장영실은 동래현을 벗어날 수 없는 관노였다

 

 

 

 

 

 

 

 

조선시대 때는 각 도의 관찰사가 유능한 인재를 중앙에 추천하는

도첨법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관찰사를 만나게 되면서

장영실의 삶은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여전히 노비신분이었지만 궁중 기술자의 길은

장영실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다가왔다

 

장영실은 상의원 소속의 기술자로 선발되어 궁중생활을 시작했다

 

 

 

 

 

 

 


상의원은 궁궐에서 사용하는 각종 물품을 공급하고

곤룡포와 같은 임금의 옷을 맡아 보던 조선시대 관청이다
손재주가 좋은 기술자들이 근무하는 관청이다

 

 

상의원에서도 장영실은 민첩한 솜씨와 영리한 머리로 일찍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세종이 그런 장영실의 기술을 얼마나 아끼고 총애했는지 실록에 잘 나타나 있다

 

 

 

 

 

 

 

장영실의 중국 유학을 결정할 당시 세종은

장영실을 자신의 과학정책을 담당할 기술관료로 키울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들 앞에서 세종이 그런 마음을 드러낸 것은 장영실이 귀국한 직후다

 

 

 

 

 

 

 

 

 

이조판서의 거센 반대로 장영실을 면차시켜

상의원 별좌로 임명하려던 세종읙 계획은 무산되었다

 

 

 

 

 

 

 

 

 

장영실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을 중시하던 세종을 만나 관노에서 벗어났다

 

 

 

 



 

 

 

-

 

 

 
1432년은 장영실에게 특별한 해였다

세종이 비밀리에 추진하는 천문의기사업팀이 조직되었다
천문관측기구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조선의 하늘을 열어나갈 천문사업팀이었다

 

 

 

 

 

 

 

예정된 사업 기간은 7년
세종이 이토록 중요한 국책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한 배경에는 명나라가 있었다

 

 

 

 

 

 

 


조선은 해마다 11월이면 동지사를 파견해

명나라 황제로부터 역서를 받아오는 것이 외교적 관례였다

 

 


그런데 왜 외교적 마찰 우려를 무릅써가며 독자적 천문관측사업을 하려는 걸까?

 

 

장영실이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1422년

일식 사건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세종과 관료들은 일식 예보 시간에 맞추어

 소복 차림으로 궁궐 뜰 앞에서 기다렸다

 

 

 

 

 


 

 

 

 

담당관리는 예보가 15분 늦었다는 이유로 곤장형 처벌을 받았다

 

실제로 그같은 오차가 있었던 걸까?

 

 

천문연구원의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면

 그 해 일어난 정확한 일식 시간과 정도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역법에 맞추어 일식 예보를 하다보니 오차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실록에는 일식 예보가 어긋나

담당 관원이 억울하게 처벌받은 기록이 적지 않게 실려 있다

 

 

 

 

 

 

 

왜 일식과 같은 천문현상 예보를 그토록 중요하게 여긴걸까?

 


정답 : 하늘이 왕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생각해서...
이러한 천문현상은 자칫 왕위의 정당성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중요한 사건 이었슴돠

 

 


세종 5년에 실시된 과거시험 책문에도 세종의 고민이 잘 드러난다

 

 

 

 

 

 

 

조선의 하늘을 관측해서

조선의 실정에 맞는 역법 체계를 만들겠다는 세종의 구상


장영실은 세종의 원대한 구상과 함께 했다
그 즈음 장영실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단서가 실록에 남아있다

 

 

 


 


 

사신단을 수행하는 종사관 자격으로 명나라를 다녀오던 중에

요동땅에 잠시 들렀던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혹시 장영실이 사신단 행렬에 끼어 천문관측기구를 관찰하고 온 것은 아닐까?

( 기술자를 사신단에 끼워 보냈다는 것은 의도가 뻔하자나영..)

장영실이 수시로 중국을 드나들었단 증거다

 

 

 



13세기 후반

남경의 자금산 천문대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북경으로 수도를 옮겨간 명나라도

자금산 천문대를 모델로 삼아 관상대를 만들었다


세종은 자금산 천문대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종합천문대를 꿈꾸었을 것이다 (야망세종...)

장영실은 그런 세종의 뜻에 따라 당대 최고수준의 천문학을 접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의 천문사업팀이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간 것은 장영실이 귀국한 직후다

 

 

 

 

 

 

이론팀과 제작실무팀이 합심해 이뤄낸 첫 성과였다
혼천의는 물레바퀴로 움직이는 시계장치와 천체가 새겨진 기기등으로 구성되어있다

 

 

-

 

 

장영실의 손을 거쳐 일성정시의가 완성된 것은 1437년
일성정시의는 주야 겸용 처체시계다

 

 

 

 

 

 

모든 변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움직인다
이것을 4등분 하여 별이 한시간동안 움직이는 각도로 시간을 재는 것이다

 

 

 

-

 

 

 


 

서울 계동의 관천대 유적은 조선의 하늘을 관찰하던 간이 천문대다

이 관천대를 만든 것도 천문 사업팀이다

 

 

 

경복궁도에는 7년 동안 진행된 천문사업팀의 성과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조선의 종합 천문대에 해당하는 간의대가 그것이다

 

 

 


(오른쪽에  옹졸하게 보이는게 사람 입니다...    ↗

간의대 엄청크죠잉.. 피라미드라고 해도 믿을 기세..)

 

 

 

 

 

1438년
마침내 천문 관측기구가 모두 완성됐다

이때부터 간의대에서 조선의 실정에 맞는 역법을 만들기 위한 천문관측이 시작됐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우리 역사상 최초의 독자적인 역법인 칠정산내외편이다

 

조선의 하늘을 관측해서 조선의 역법과 조선의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 지던날

장영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장영실은 세종을 만나고 당대 쟁쟁한 학자들과 만나면서 그 능력을 꽃피울수 있엇다
장영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장영실은 세종에게 바칠 선물을 남몰래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팀을 이루어 천문관측기구들을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구상하고 설계했다

세종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담아낸 마지막 작품이었다

 

 

 

 

 


천상시계 옥루


옥루는 절기의 변화에 따라 농사짓는 풍경이 펼쳐지고

 12지신 인형이 시간을 알리는 자동천문시계


하늘의 비밀을 관측해서 백성들에게 절기와 시간을 알려주고자 했던

세종의 통치철학을 구현한 천상시계었다

 

 

 

 

 

하지만 장영실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

 

 

 


세종의 온천행을 앞둔 1442년 3월

 

 

장영실은 가마제작을 감독했다

세종이 온천행차때 타고갈 가마였다

 

 


 

 

 

이상한 점은 함께 가마 제작을 감독했던

대호군 조순생의 태도이다

 

 

 

 


 

 

 

 

그리고 3월 16일
시험운전을 하던 중 가마는 부서졌다

 

 

 

 

 

 

 


영문을 알수 없는 가마사건으로 장영실은 의금부로 끌려갔다
그리고 역사의 무대에서 돌연 사라진다


그렇다면 장영실이라는 존재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았던 것일까?

 


장영실의 손을 떠난 자격루는 고장이 나도 고칠 기술자가 없었다

 

 

 


무려 15년 동안이나 사용이 중단 되기도 했을 정도다

 

 

 


가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세종의 태도는 많은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런데 세종은 의외의 답변을 한다

 

 

 

 

 

 

" 순생의 일은 박감과 실로 다름을 그대들이 알지 못했을 뿐이다"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조순생을 벌주지 말것을 밝힌다


직접적인 가마 제작 직책은 장영실이 아니라 조순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마사건때 조순생은 죄가 없다고 묻지 않고 장영실을 내치고
조순생은 복직이 되고 장영실은 영원히 축출된다

 

 

이상한 것은 또 있다

 

 

 

장영실이 파면된 이듬해인 1443년

느닷없이 간의를 헐라고 지시했다

 

 

 

 

 

신하들이 반대하자 세종은

중국 사신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조선의 천문사업을 명나라에서 눈치채고 외교문제로 비화시킨 것은 아닐까?

 

 

중종실록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명나라와 사대교린의 관계로 출발한 조선의 입장에서

 조선의 천문의 사업은 숨겨야할 사안이었다

 

 


장영실을 파면시킨 어가사건이

세종이 비밀리에 추진해온 훈민정음 완성을 앞두고 일어났다는 점도 의혹을 더한다

 

 

한글 사용을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최만리는 중국을 섬기는 처지에 한자를 버리고 새로운 글을 만드는 것은

오랑캐와 같아지는 길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쓰잘데기 없이 줏대있는 새끼ㅠㅠㅠㅠㅠㅠㅠㅠ)

 


조선의 독자적인 하늘을 열고 조선의 독자적인 글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사대교린의 외교관계 였다

 


장영실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시킨 문제의 가마 사건은

이러한 정치적 상황이 빚어낸 것은 아닐까?

 

 

세종은 끝내 장영실을 부르지 않았다

 

 

 

 

 

다만 동국여지승람에는 장영실이 아산의 명신이 되었다고 기록하고있다

 

 

 


-

 

 

 

 

 

 

 

 

 


노비의 신분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기술자가 되기 까지

 장영실은 극적인 삶을 살았다


세종시대 쟁쟁한 학자들이 만들어놓은 이론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서 천체관측기기가 됐고

 

그 천체관측기기들은 조선의 독자적인 하늘을 여는 초석이 되었다

 

 

 

 

 

 

 


 

 

  

+ 오타나 맞춤법 지적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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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거 외에는 볼 것도 없는 블로그에요.. ㅋㅋㅋㅋ

 

 

 

 +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무도 안기다려도 알아서 혼자 찾아옵니다

(재촉하면 더 빨리옴. 쉬운여자 ㅇㅇ)

오랜만에 게시글 쓰려니까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안나서 예전 글들 좀 봤어요..

스티큐브가 종료되서 bgm이 안나오는것도 몰랐어요. 핫챠!

예전 글들의 개드립을 보며 혼자 하이킥도 좀 하고.. 

글을 쓸수록 한층 어색하고 좋네여...ㅋ..ㅋ..ㅋㅋ

 

 

 

+ 사실은 지난번에 예고 아닌 예고를 한 대로 이완용편을 쓰려다가

정초부터 이완용을 보자니 주먹이 부들거려서 장영실로 대체 했어요.

 

언제 또 글을 올릴지 몰라

항상하는 다음편 예고가 이번엔 없습니다.

  

늦었지만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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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소울드레서 (SoulDresser)
글쓴이 : ⓧenough. wh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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