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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군 장영실, 그는 왜 사라졌나?
장영실의 감독 아래 문제의 가마가 완성된 것은 1442년 3월
세종이 이용할 가마였다 첨단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든 장영실의 실수로 보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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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전 장영실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킨 유물이 복원되어 있다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매 시간마다 각기 다른 인형이 튀어나와 시간을 알려준다
장영실이 자격루를 개발했을 당시 이같은 자동시계의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중국과 아라비아 단 두나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장영실은 언제 어떻게 이런 자동시보장치 시계를 개발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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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년
관노 신분의 장영실이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기회가 찾아온다
장영실을 불러들인것이다
각종 천문기구들을 눈에 익히고 돌아오도록 하여라"
구체적으로 언급한 천문관측기구가 있다
지금은 관광 유적으로 개방해 놓아 관람료만 내면 누구나 살펴볼 수 있다
관상대는 황제의 명에 따라 관리되는 통제구역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달려온 중국 유학길
그나마 북경의 서점가는 장영실에게 신천지와 같은 곳이었다
지금도 옛 책을 파는 서점들이 즐비하다 당시 북경서점가는 장영실의 갈증을 풀어줄 국제 문명의 창구였다
그동안 써오던 물시계를 계량해 보다 정밀하게 만든것이다
청동으로 만든 세개의 항아리와 파이프 모양의 긴 물통만 남아있는데 이것이 전통적인 물시계의 핵심 부품이다
그러다 보니 담당자의 실수로 시간을 잘못 알려 처벌 받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확한 시간을 알려줄 수 있는 새로운 시계가 필요했다
원천 기술 이전 없이 자동 물시계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고난이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자격루 개발에 매달린 기간만 십여년 오랜 연구와 실험 끝에 장영실은 자동시보장치 기술을 개발했다
세종 실록 보루각기에는 자격루 작동원리가 상세하게 적혀있다
↖자격루의 물이 흘러내리며 생기는 힘으로 구슬을 떨어트리는 동통장치(사진의 왼쪽)와 시간을 알리며 종이나 북을 치는 시보장치(사진의 오른쪽)↗
자격루는 간단한 원리에서 출발한다
영국의 과학자 조셉 니덤은 (죠니뎁 아님) 천상시계라는 저서에서 자격루에 상당부분 지면을 할애했다
스트라이킹 클렙시드라 라는 학명까지 부여했다
장영실이 자격루를 완성한 것은 1434년 세종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격루는 경복궁 보루각에 설치됐다
세종은 진심으로 장영실이 아니면 자격루를 만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자동물시계 개발로 장영실은 세종의 이상을 구현하는 위대한 손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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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루를 개발한 직후 정4품인 호군으로 승진한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 언제 어떻게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난 것일까?
장영실이 궁중기술자로 첫 발을 내딛은 것은 1412년 이는 태종 임금때로 실록에 나와있다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세종 실록에는 장영실의 아버지가 원나라 소항주 사람이고 어머니는 기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9세기에 제작된 아산장씨세보 여기에는 장영실의 선조가 송나라때 고려로 건너와 귀화한 것으로 되어있다
고려말 - 조선 초기에는 원나라 기술자들을 기녀와 결혼 시켜 정착하게 만드는 귀화정책을 펼쳤다
장영실의 어머니는 동래 관비였다 관기의 몸에서 태어난 장영실은 동래현을 벗어날 수 없는 관노였다
조선시대 때는 각 도의 관찰사가 유능한 인재를 중앙에 추천하는 도첨법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관찰사를 만나게 되면서 장영실의 삶은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여전히 노비신분이었지만 궁중 기술자의 길은 장영실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다가왔다
장영실은 상의원 소속의 기술자로 선발되어 궁중생활을 시작했다
곤룡포와 같은 임금의 옷을 맡아 보던 조선시대 관청이다
상의원에서도 장영실은 민첩한 솜씨와 영리한 머리로 일찍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장영실의 중국 유학을 결정할 당시 세종은 장영실을 자신의 과학정책을 담당할 기술관료로 키울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들 앞에서 세종이 그런 마음을 드러낸 것은 장영실이 귀국한 직후다
이조판서의 거센 반대로 장영실을 면차시켜 상의원 별좌로 임명하려던 세종읙 계획은 무산되었다
장영실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을 중시하던 세종을 만나 관노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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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비밀리에 추진하는 천문의기사업팀이 조직되었다
예정된 사업 기간은 7년
명나라 황제로부터 역서를 받아오는 것이 외교적 관례였다
장영실이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1422년 일식 사건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소복 차림으로 궁궐 뜰 앞에서 기다렸다
담당관리는 예보가 15분 늦었다는 이유로 곤장형 처벌을 받았다
실제로 그같은 오차가 있었던 걸까?
천문연구원의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면 그 해 일어난 정확한 일식 시간과 정도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역법에 맞추어 일식 예보를 하다보니 오차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실록에는 일식 예보가 어긋나 담당 관원이 억울하게 처벌받은 기록이 적지 않게 실려 있다
왜 일식과 같은 천문현상 예보를 그토록 중요하게 여긴걸까?
조선의 하늘을 관측해서 조선의 실정에 맞는 역법 체계를 만들겠다는 세종의 구상
사신단을 수행하는 종사관 자격으로 명나라를 다녀오던 중에 요동땅에 잠시 들렀던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 기술자를 사신단에 끼워 보냈다는 것은 의도가 뻔하자나영..) 장영실이 수시로 중국을 드나들었단 증거다
남경의 자금산 천문대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북경으로 수도를 옮겨간 명나라도 자금산 천문대를 모델로 삼아 관상대를 만들었다
세계적인 수준의 종합천문대를 꿈꾸었을 것이다 (야망세종...) 장영실은 그런 세종의 뜻에 따라 당대 최고수준의 천문학을 접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의 천문사업팀이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간 것은 장영실이 귀국한 직후다
이론팀과 제작실무팀이 합심해 이뤄낸 첫 성과였다
- 장영실의 손을 거쳐 일성정시의가 완성된 것은 1437년
모든 변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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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계동의 관천대 유적은 조선의 하늘을 관찰하던 간이 천문대다 이 관천대를 만든 것도 천문 사업팀이다
경복궁도에는 7년 동안 진행된 천문사업팀의 성과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른쪽에 옹졸하게 보이는게 사람 입니다... ↗ 간의대 엄청크죠잉.. 피라미드라고 해도 믿을 기세..)
1438년 이때부터 간의대에서 조선의 실정에 맞는 역법을 만들기 위한 천문관측이 시작됐다
조선의 하늘을 관측해서 조선의 역법과 조선의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 지던날 장영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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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은 세종에게 바칠 선물을 남몰래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구상하고 설계했다 세종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담아낸 마지막 작품이었다
12지신 인형이 시간을 알리는 자동천문시계다
세종의 통치철학을 구현한 천상시계었다
하지만 장영실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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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은 가마제작을 감독했다 세종이 온천행차때 타고갈 가마였다
이상한 점은 함께 가마 제작을 감독했던 대호군 조순생의 태도이다
그리고 3월 16일
세종의 태도는 많은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런데 세종은 의외의 답변을 한다
" 순생의 일은 박감과 실로 다름을 그대들이 알지 못했을 뿐이다"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조순생을 벌주지 말것을 밝힌다
이상한 것은 또 있다
장영실이 파면된 이듬해인 1443년 느닷없이 간의대를 헐라고 지시했다
신하들이 반대하자 세종은 중국 사신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조선의 천문사업을 명나라에서 눈치채고 외교문제로 비화시킨 것은 아닐까?
중종실록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명나라와 사대교린의 관계로 출발한 조선의 입장에서 조선의 천문의 사업은 숨겨야할 사안이었다
세종이 비밀리에 추진해온 훈민정음 완성을 앞두고 일어났다는 점도 의혹을 더한다
한글 사용을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최만리는 중국을 섬기는 처지에 한자를 버리고 새로운 글을 만드는 것은 오랑캐와 같아지는 길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쓰잘데기 없이 줏대있는 새끼ㅠㅠㅠㅠㅠㅠㅠㅠ)
가장 큰 걸림돌은 사대교린의 외교관계 였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이 빚어낸 것은 아닐까?
세종은 끝내 장영실을 부르지 않았다
다만 동국여지승람에는 장영실이 아산의 명신이 되었다고 기록하고있다
장영실은 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손을 거치면서 천체관측기기가 됐고
그 천체관측기기들은 조선의 독자적인 하늘을 여는 초석이 되었다
+ 오타나 맞춤법 지적 환영합니다 사진이나 음악이 제대로 안나오면 말씀 해주세요 개인소장과 카페이동 허용합니다 다만 스크랩은 여러분의 양심에 맡깁니다 출처만 정확하게 밝혀주신다면야.. (왜 출처가 다른 카페로 바껴서 돌아다니냐긔.. 그러지 맙시다)
+ 전 편 들은 각각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 1부 "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1769 세종대왕 2부 " 소리가 하늘이다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1822 광해군 " 명분인가 실리인가, 고독한 왕의 투쟁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1973 두 번 왕후가 되다 " 고구려여인 우씨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2777 신화가 된 사랑 " 공민왕과 노국공주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3061 고려여걸 " 천추태후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3345 새로운 조선을 꿈꾸다 ' 소현세자빈 강씨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3690 왕의 남자 " 내시 김처선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3970 아버지의 눈물 " 영조"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4227 무인 "정조대왕"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4489 시인과 기생, 사랑으로 시대를 넘다 " 최경창과 홍랑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5117 미스터리 추적, 백제왕 창 1 부 " 스님이 되려한 왕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5125 미스터리 추적, 백제왕 창 2부 " 왕의 꿈, 왕의 눈물"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5439 발해 1 부 최초의 중원침공, 당을 정벌하라 " 무왕 대무예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6290 발해 2 부 황제의 나라가 되다 " 문왕 대흠무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8187 조선의 르네상스를 그리다 " 단원 김홍도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8606 신중하고 신중하라, " 수사관 정약용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9645 세조의 킹 메이커 " 신숙주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10746 조선의 여성 CEO " 김만덕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11598 시인은 왜 당쟁의 투사가 되었나 "송강 정철"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13189 "박문수"는 왜 암행어사의 전설이 됐나?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19053 춤을 사랑했던 왕세자 "효명"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28628 협상을 말하다, 고려 외교관 " 서희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31021 왜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났을까 "허난설헌"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50767 라스트 프린세스 "덕혜옹주"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56861
+ 게시글은 지우지 않겠습니다 제 블로그에서도 검색 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hyloveka
메뉴의 "조잡한 취미생활" 누르시면 지금까지 올린 게시물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거 외에는 볼 것도 없는 블로그에요.. ㅋㅋㅋㅋ
+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무도 안기다려도 알아서 혼자 찾아옵니다 (재촉하면 더 빨리옴. 쉬운여자 ㅇㅇ) 오랜만에 게시글 쓰려니까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안나서 예전 글들 좀 봤어요.. 스티큐브가 종료되서 bgm이 안나오는것도 몰랐어요. 핫챠! 예전 글들의 개드립을 보며 혼자 하이킥도 좀 하고.. 글을 쓸수록 한층 어색하고 좋네여...ㅋ..ㅋ..ㅋㅋ
+ 사실은 지난번에 예고 아닌 예고를 한 대로 이완용편을 쓰려다가 정초부터 이완용을 보자니 주먹이 부들거려서 장영실로 대체 했어요.
언제 또 글을 올릴지 몰라 항상하는 다음편 예고가 이번엔 없습니다.
늦었지만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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