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 ...

[스크랩] 박수애 여사가 말하는 문국현 1~6

그리운계절 2007. 11. 26. 22:26

[수애씨의 편지] ⓛ 첫 만남에서 청혼까지

사이버팀 정철운


[수애씨의 편지]는 책 <사람이 희망이다> 출판을 위해 박수애 여사와 열 시간 가까이 나누었던 대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일부 내용은 책에 나오기도 합니다. (편집자 주)


 제가 정신여고 과학 선생으로 일하던 시절, 아마 교직에 선지 3년째 되던 해였을 거예요. 같이 일하는 학교 때 동창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결혼해서 남편이 있었어요. 이 친구 남편의 친구가 바로 지영아빠(문국현)였어요. 어느 날 이 친구가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해서 갔더니 지영아빠가 와 있더라고요. 같이 밥을 먹었는데 말없이 조용했어요. 그리고 그때도 지금처럼 썰렁했죠.

 그때 제가 앉은 자리 옆에 밥통이 있었는데 갑자기 지영아빠가 “수애씨, 밥이 거기에 있네요.”라고 말했어요. 그게 그 사람이 제게 건 낸 첫 마디였어요. 그때엔 별 사건도 없이 헤어졌는데 한참 후에 연락이 오더군요.

(이때 옆에 있던 문국현 후보가 말한다.)

 그때가 유한킴벌리 전산실장으로 있을 때였는데 전산화 작업을 하는 중이어서 너무 바빴어요. 회사 옆에 아파트 작은걸 얻어 밤새 일하는 형편이었죠. 그래서 연락을 할 수 있나. 그러다 시간을 내서 연락한 것이, 만난 지 3개월만이었어요.

 나는 처음에 보는 순간 반했어요. 워낙 그때도 곱고 예뻤어. 친구들한테 수애명성이 자자했었지. 예쁘고 여자답고.



<문국현의 러브러브 포트폴리오>

(다시 박수애 여사가 말한다.)

 이 사진첩은 처음에 만나기 시작할 때 자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준 거에요. 아기 때부터, 이거는 장교시절 때. 그때도 낭만이 있었어요(웃음).

 그이는 자상했습니다. 처음부터 자상했어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데이트를 하는데 이촌동에 있는 어디 빵집에 들어가서 샌드위치를 먹다가 급하게 먹어서 배탈이 났어요. 그래서 화장실에 갔죠. 급하게 화장실에 가서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랬더니 그 양반이 화장실 앞에 와서 “수애씨~ 수애씨~ 괜찮아요?” 그러고 찾아왔더라고요. 보통 남자들은 안 그러잖아요. 그래서 제가 “괜찮아요~” 큰소리로. 그때가 만난 지 몇 번 안 되었기 때문에 저 양반이랑 너무 안 어울리는 거에요. 얼굴은 근엄하고 심각한 사람이 행동은 정 반대로 하니까.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마음이 놓이더군요.

 그 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데 제가 배가 아프니까 손으로 따뜻하게 해주더라고요. 할머니 약손처럼. 보통은 망설이고 잘 못하는데 이 양반은 식구처럼 배려를 잘 해주었어요. 그럴 때는 격의를 안 두더라고요.


 세 번째 만나는 날, (그 이가) 청혼을 했어요. 둘이 택시를 대절해서 북악스카이를 갔죠. 거기서 차를 기다리라고 하고. 그리고 긴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가 부족한 점이 참 많다고. 이 양반은 결혼하자는 뜻이었어요. 부족한 점이 많지만 노력하겠다, 열심히 하겠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더군요. 제 생각에는 그이가 “나는 참 부족한 것이 많다”고 하니까 혹시 물러나겠다는 소리인가 했었어요. 정말 청혼도 겸손하게 했죠. 부족한 점이 많으면 물러갈 것이지(웃음).

 
<1978년 3월 14일, 태릉에서 데이트>


[수애씨의 편지] ② 신혼시절


사이버팀 정철운



<약혼식>

 저 사람(문국현)은 총각 때 무지 무지 말랐었어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방에 앉았는데 땅에서부터 무릎까지 높이가 이렇게(손으로 가리키며) 얇았어요. 그래서 저희 엄마가 걱정을 하더라고요. 저 사람이 저렇게 말랐는데 혹시 병이 있는 건 아닌가 해서(웃음). 우리 딸 고생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죠. 그때 저희 엄마가 건강 진단서를 봐야겠다고 농담조로 말씀하셨어요. 그랬는데 저 사람이 실제로 건강진단서를 떼 오더라고요(웃음).

 우리 아이들이 저 사람 젊을 때 사진보면 개구리 같다고 해요. “엄마는 어떻게 이런 얼굴의 남자랑 결혼 했어?”라고 할 정도에요. 그런데 나이 들면서 살도 붙고 멋진 사람이 되어가더라고요.


 저는 결혼하기 전까지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단순하게 생각하고, 재밌으면 크게 웃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결혼하면서 복잡하게 살게 된 것 같아요. 결혼하고 바로 시댁에서 3년을 살았어요. 시어머니는 생각이 깊으신 분이었죠. 제가 시어머니가 어려워서 그때부터 긴장하고 살고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시댁 어른과 같이 살 때 큰 아이 임신하고 거기서 낳고 그리고 큰 아이 돌 때쯤 (집에서)나왔어요. 시댁에서 신혼은 없었어요. 저 사람이 너무 효자라서. 아침저녁으로 가서 아버님과 말 벗 해드리고 이부자리 깔아드리고 개서 올려드리고. 이 사람은 맛있는 것을 사와도 3봉지를 사왔어요. 어머니 아버님 1봉지 주고, 여동생 1봉지 주고, 그리고 저를 주고. 그래서 저는 남편과 단 둘이 공유한 것이 거의 없었어요. 늘 3분의 1만 공유했죠.


 결혼하고 나서도 저 사람(문국현 후보를 가리키며)은 계속 바빴어요. 밤늦게까지 일하고. 그때는 통행금지 시간이 있었는데 늘 아슬아슬하게 들어왔어요. 12시가 되면 대문 앞에서 택시 문 닫는 소리가 ‘탁’하고 들렸어요. 그리곤 새벽같이 나가고 그랬죠.

 사람들은 보통 예비군 훈련이 있으면 훈련 끝난 뒤에 집에 와서 쉬는데, 저 양반은 다시 일하러 가더라고요. 요즘 같으면 저런 사람 이혼감이야(웃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돈 많고 시간 없는 사람보다 자기랑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을 택하잖아요. 내가 뭘 모르고 그땐 그냥(웃음).

 아이 낳을 때 요즘은 남편이 같이 들어가기도 하고 늘 같이 있는데, 이 사람은 회사 일에 바빠서 퇴근하면서 잠깐 보고 또 못 보고 했었어요. 남편이 곁에 없어서 제가 참 많이 울었어요. 아이 낳고 우니 몸이 갑자기 붓더라고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조용히 묻더군요. 무슨 일이 있느냐고.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별일 없다고 하고 말았어요. 그때 참 서럽더라. 그래도 그 이가 그 뒤로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1986년 3월 23일, 큰 딸과 함께하는 베란다 청소>

 처음에 아이 낳고 집으로 왔을 때 (그 이에게) 아이를 안아 보라고 했더니 부숴 질까봐 안지를 못하더라(웃음). 82년도인가 분가해서 나왔는데 19.8평짜리 아파트였어요. 그 옆에 베란다가 작게 있었는데 지영아빠는 그 곳에 고무 튜브에 물을 담아 놓고 큰 딸을 앉힌 다음 애기 보면서 베란다를 청소하곤 했어요. 물청소하면서 애기랑 놀아주고 그랬죠.

 이 사람은 신혼 때부터 청소하는 걸 그렇게 좋아했어요. 우리는 설거지하면 그릇만 닦는데 이 사람은 가스레인지, 싱크대 할 것 없이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아 놓아요. 지금도 그래요. 성격인 것 같애(웃음).

 저 양반은 신혼 때부터 밤에 늦게 와서도 샤워하고 양말을 자기가 손으로 꼭 빨아서 베란다에 널었어요. 속옷도 빨아서 널더라고요. 결혼 초에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좋아했는데. 내가 내 발등을 찧었어. 일하는 모습 좋다고 했더니 평생 일만 해. ㅠㅠ 

 

 

[수애씨의 편지] ③ 가족


사이버팀 정철운
 


<1986년 1월 14일, 큰 딸의 생일>

 한 번은 남편이 회사일로 외국 출장을 가서 여러 달 있다 온 적이 있는데, 그 때 이 사람이 테이프에 목소리를 녹음해서 편지를 보냈던 적이 있어요. 그걸 애들한테 틀어줬는데 애들이 아빠 보고 싶다고 막 울고 그랬어요. “사랑하는 수애~”로 시작하는 편지였어요(웃음).  우리 남편은 애들한테도 그렇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참 잘 해요. 지금도 저한테는 출근 할 때 볼에 입 맞춰 주고 출근하곤 해요. 전화 끊을 때도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같이 있지 못해도 그 이는 자기 마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편지를 받기 시작한 건 결혼하고 1년 즈음 지나서였어요. 지영아빠가 예비군 훈련이 나와서 며칠 동안 훈련을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온 편지가 기억나요. 그 내용이, “우리가 연애할 때 편지를 주고받지 않아서 연애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요”였던 것 같아요.


 우리 남편은 너무 일만해서 남들처럼 편히 살지는 못했어요. 제 친구들을 보면 남편이 집에 와서 저녁 먹고 8시부터 부부가 같이 저녁 운동도 나가고 산책도 나가고 하는데 그게 너무 부러웠어요. 한 번은 혼자 산책을 나갔는데 부부가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책하는 모습을 봤어요. 저는 저녁 8시에 산책하려면 늘 혼자서 나가야 했어요. 우리 남편은 그 시간에 일을 하거나 사회공헌 활동 같은 좋은 일을 하기위해 회사 끝나고 약속 장소로 이동 중 일 때가 많았어요.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친구들이 남편 온다고 저녁 하러 집에 들어가곤 했는데, 저는 혼자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곤 했어요. 어떻게 보면 참 외로운 인생이죠(웃음).

 이 사람은 정말 바쁜 사람이에요. 심지어 스케줄이 1년 후까지 나와 있을 때도 있어서 갑자기 여행을 가거나 하는 것은 어려워요. 그래서 남편은 주로 시간이 나는 틈틈이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그 동안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해요. 우리 가족은 주로 ‘대화’를 많이 해요.


 지영아빠의 노력덕분인지, 아이들은 아빠에 대한 불만이 거의 없었어요. 짧게 시간을 내더라도 온전히 집중해서 아이들과 보내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아이들은 아빠를 중요한 사람, 자기 일을 열심히 잘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아빠를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자기 일을 잘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지지하는 것이죠. 그래서 (아빠한테)시간을 내달라고 하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그랬어요.

 남편은 잠깐 시간을 내더라도 아이들과 충분히 대화하고 집중했어요. 아이들은 이력서 쓸 때나 회사와 사회생활에 대해서 물어보곤 해요. 그러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서 밤 12시, 1시에도 충분히 토론하고 대화를 해요. 그래서 애들은 아빠 올 때까지 안자고 기다렸다가 아빠와 대화를 통해 해답을 얻어 갈 때도 있어요.

 그리고 이 사람은 부모님께 엄청 잘 해요. 가끔은 제게 애정을 다 주었으면 싶은데 이 사람은 부모님께, 사회에 힘든 사람들에게 애정을 나누어줘요. 어떨 때는 혼자서 밤 11시쯤 이렇게 TV를 보다 보면 내가 결혼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안 한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같기도’ 결혼 생활이에요(웃음). 문국현 같은 사람하고 결혼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은 혼자 살았어야 돼(웃음).



<어느 봄날, 딸과 함께 하는 마당 청소>

 아이들은 아빠를 굉장히 잘 챙겨줘요. 제가 이민 간 남동생을 만나러 캐나다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아빠 식사거리를 잘 챙겨주더라고요. 엄마가 자식 챙기듯이. 그런 아이들을 보면 기특해요. 밤 12시고 1시고 남편이 일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과일 깎아서 아빠 먹으라고 주고 그래요. 사랑받는 아빠에요.

 아이들이 아빠의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부담스러운 부분도 조금 있어요. 긴장을 해야 되는 부분이 생기니까. 그런데 아이들은 아빠가 아빠 본연의 일을 잘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들도 아빠를 보고 자기 역할을 잘 해야겠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딸들도 나이가 차고 결혼할 나이가 되어가고 있어요. 저는 딸들이 남을 배려하는 사람을 데려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실수했을 때도 탓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말해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을 만나라고 이야기해요. 아내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을 만나라고. 그런데 말하고 보니 우리 남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웃음). 이 사람은 만날 때마다 늘 웃는 얼굴이었어요. 늘 긍정적이었어요. 이 사람에게 안 되는 것은 없어요. 그게 제가 이 사람하고 결혼하려고 마음먹었던 계기였죠(웃음).

 우리는 어떤 문제를 볼 때 “이건 이래서 안 된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이건 이렇게 하면 되겠다”고 이야기해요. 다른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도 이 사람에게는 가능하고, 또 실제로 그것을 실현해내요. 정말 멋있고 듬직한 사람이에요. 

 

 

[수애씨의 편지] ④ 가정적인 국현씨


사이버팀 정철운


<2007년 11월 알레르기 클리닉에서 한 어린이를 만난 문국현 후보>

 지영아빠는 애기나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해요. 엘리베이터를 타도 애기들만 보면 같이 눈 맞추면서 좋아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그리고 강아지도 아주 좋아해요. 강아지들도 저 양반을 좋아해요. 강아지들이 알아요, 저 양반이 자기들 좋아하는 걸. 그러면 강아지가 저 양반 앞에 와서 발라당 누워요. 그 때 남편은 자켓을 벗어서 강아지위에 덮어 놓고, 장난치고 그래요.

 우리 지영 아빠는 집에 들어오면 무장해제가 되요. 집에 오면 애기처럼 굴 때도 있어요. 아마 다른 사람은 상상도 못할 거예요(웃음). 마치 막내아들처럼 변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아빠와 친구처럼 지내요. 일요일같이 쉬는 날은 소파에 드러누워 셋이서 놀고 그래요. 그런 모습을 보면 왠지 뿌듯하고 좋습니다.

 그렇게 집에 있다가도 밤중에 아이들과 동대문에 가곤 해요. 우리 애들은 밤에 동대문 가서 옷 사는 걸 좋아해요. 그럼 남편이 운전을 해서 동대문에 애들을 내려주고, 우리 부부는 남산 같은 곳에 가서 산책하며 이야기하곤 해요. 밤에 하는 데이트에요. 그렇게 1시간, 2시간 지나고 나면 아이들한테 끝났다는 전화가 와요. 그러면 데리러 가서 같이 집에 돌아옵니다. 아이들도 너무 좋아하고, 우리 부부도 신혼 때 데이트처럼 가슴이 설레곤 해요. 그 시간이 참 좋은 것 같아요.


 밤 12시쯤 되면 일부로 자려고 노력할 때가 있어요. 어떤 때는 TV를 보다가도 대문에 ‘똑똑’ 소리가 들리면 애들한테 “나 잔다고 해~” 이러고 침대로 가서 자는 척 해요. (남편이)하도 밤에 산책을 하자고 그래서(웃음). 산책을 다녀오면 잠이 다 달아나거든요. 저는 남들처럼 8시 9시에 산책하고 싶은데 이 사람은 12시 1시에 산책하자고 하니까 그게 심술이 나서 그렇게 해요(웃음).

 주로 산책을 가면 제가 질문을 많이 해요. 보통은 제가 새로 생기는 단어들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해요. 경제용어라든가, 영어나 한자도 자주 물어요. 그러면 우리 남편은 즐겁게 대답을 해줘요. 그런 것이 참 기분 좋아요. 보통은 그런 것도 모르냐고 무시할 수도 있는데, 남편은 안 그러니까. 경제 이야기, 정치 이야기, 친구 간에 문제점 같은 것, 예를 들어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돼?”같은 것도 물어봐요. 그러면 지영아빠는 자기 일인 것처럼 깊게 생각해서 이야기해줘요.

 어떨 때는 내가 혼자서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이야기해 줘요. 그러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건 이런 부분이 조금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 해 주곤해요. 이 사람 말에 따르면 내가 더 과격하고 급진적이래요(웃음). 우리 남편은 어떤 사안이나 정책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저는 듣고 감탄할 때가 많아요. 


<수애씨와 함께하는 연날리기>

 이 사람은 배려가 몸에 배어있어요. 떨어져 있어도 마음으로 신경써주니까 멀리 있어도 같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침에 출근할 때에도 하루 계획을 묻고 친구들 만나고 재밌게 지내라고 이야기도 해주고 그래요. 그이는 친구 이름까지 잘 알아서 그날 밤이 되면 “정희는 어떻게 지내냐”고 묻고 그래요. 낮에는 어디에서 누구와 있는지, 재밌게 놀고 있는지 전화해서 묻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연애할 때 기분이 날 때도 있어요.

 기념일 같은 날은 일하다가도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시간이 나면 잠깐 들러서 같이 산책도 하고 밥 한 끼를 먹어요. 그렇게 바쁜 중에도 노력을 하니까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수애씨의 편지] ⑤ 그의 약점과 강점


사이버팀 정철운




<노래는 힘들어~>

 우리 남편은 썰렁해서 둘째 딸에게 많이 혼나요(웃음). 집에서는 평소에 썰렁한 유머를 자주 해요. 사실 어떤 때는 웃긴데, 어떤 때는 정말 안 웃겨요. 그러면 우리 둘째 딸이 "아빠, 이 시츄에이션을 어떻게 해결할거야?" 이래요. 둘째 딸이 아주 유머러스해서 남편이 당해내질 못해요. 남편은 재미있다며 웃기에 바쁘죠. 지영아빠는 워낙 썰렁해서 노력은 많이 하는데 거의 안 웃겨요. 자세하게 어떤 유머를 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이 사람은 TV를 잘 안 봐서 TV에서 하는 유머도 잘 못 알아들어요.

 사람들과 만날 때는 아주 예의를 갖춰요. 배려하는 마음이 강해서 그래요. 실례될까봐. 그런데 너무 배려하면 상대방이 오히려 긴장되잖아요. 너무 예의를 차리는 게 약점이에요. 실례를 안 하려고 하는 것이 도리어 약점인 것 같아요.

 일만 하는 것도 제가 보기에는 일종의 약점이에요. 주말마다 좀 쉬고 그래야 되는데 주말에도 바쁘게 일을 해요. 그래서 함께 할 시간이 적어요. 일만 하다보니까 노래도 못 부르는 것 같아요(웃음). 시아버님은 노래를 너무너무 잘 하셨어요. 술 한 잔 하시면 항상 부르는 노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 사람은 그걸 안 닮았어요. 음을 자기 마음대로 다스려(웃음).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있잖아요. 지영아빠가 지금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남편의 편한 모습,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하고 있어요. 유머감각은 떨어져도 지영아빠는 우리와 같은 일상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이에요.


 결혼한 지 3년이 되어 분가하고 얼마 안 된 때였어요. 아침에 눈이 많이 와서 예쁘다 싶어서 이 사람을 깨워서 “눈 왔다!”고 했더니, 이 사람은 “빨리 가야겠다.”는 말부터 하더라고요(웃음). 회사갈 일이 걱정이었던 거예요. 지영아빠는 책임감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에요.

 남편하고 처음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굉장히 더운 여름에 이태리를 갔었는데 이태리에서는 길에 ‘쓰리꾼’ 이런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가이드가 가방을 앞으로 해서 조심하라고 이야기도 해주고 했었어요. 그런데 뒤에 아주머니 서너 분이 관광객 무리에서 뒤쳐진 거예요. 순식간에 이태리인 몇 명이 딱 둘러싸더라고요. 그 때 남편이 막 뛰어가면서 “뒤에 떨어지지 마세요, 얼른 뛰어 오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쳤어요. 그러니까 이태리 남자들이 이 팀에 남자도 있구나 싶으니까 떨어지더라고요. 이 사람은 그렇게 나서서 챙기기를 잘해요. 특히 여자들을(웃음).

 19평 복도식 아파트에서 살 때에도 엘리베이터에서 늘 다른 분들을 먼저 태웠어요. “안녕하세요.”하면서. 그러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경계해요. ‘외판원인가?’하면서 왜 이러나 싶은 거죠. 그런데 남편은 모두 탄 다음에는 “몇 층 가시죠?” 하면서 층수까지 눌러주고 그랬어요. 내릴 때에도 “먼저 내리시죠.”라고 하고(웃음). 그 뒤 아파트에 소문이 퍼졌어요. 나중에는 예의 바르고 매너 좋다고 칭찬이 자자했죠. 그래서 그쪽 사람들이 지금도 우리 남편을 기억하곤 해요.


 요즘 남편은 집에 들어와서 새벽까지 인터넷을 켜고 일을 보다가 2시 쯤 잠들어요. 그리고 다음날 일찍 회의가 있으면 6시쯤 일어나요. 평소에 잠을 4시간 정도 자는 것 같아요. 그래서 주로 차안에서 이동 중에 쉬고 그런대요. 이 사람은 자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한 기계가 있으면 반드시 자기가 직접 공부하고 익히는 스타일이에요.

 집에서는 신문을 2부만 보는데 회사에서 다양한 신문을 가지고 와서 1시간이고 앉아서 신문을 봐요. 그리고 혼자 밥 먹을 때면 그 옆에 신문을 두고 보면서 먹을 때가 있어요. 시간이 워낙 없으니 그렇게 해요. 안쓰러울 때도 있지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대단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대학생들과의 강연을 준비중인 지영아빠>

 

 

[수애씨의 편지] ⑥ 국현씨의 소중한 기억들


사이버팀 정철운 




<1970년대, 청년 문국현>

 지영아빠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반에서 같이 전교회장 부회장 했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고3 때까지 계속 교재를 했나 봐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아마 어머님은 모르실거라고(웃음). 근데 이 사람은 고3때 대학시험에서 떨어졌는데, 그 여학생은 붙은 거예요. 그래서 헤어지게 된 것 같아요. 대학교 때에도 누군가를 혼자서 짝사랑했대요. 그런데 그 여학생이 나중에 약혼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나 봐요. 이 사람이 술을 못 먹는데 혼자서 술을 먹고 졸도 했다고 그러더라고(씁쓸한 웃음). 이 사람에겐 사랑의 실연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국민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여자만, 대학교 때도 한 여자만 좋아했다고. 그러면서 청년 시절에 여자로 인해 너무 고민하고 고생해서 자기는 이제 바람을 필 수가 없대요(웃음). 그러면 제가 그렇게 짝사랑한 여자인데 좋아한다고 말을 하지 왜 얘기를 못하고 끙끙거리고 뜸 들이다 딴 사람과 약혼하게 만들었냐고 말해요. “말을 하지, 뭐 했냐”고. 제가 다 답답하더라고요(웃음).


 이 사람은 ROTC 시절 데모를 나가기도 했어요. 젊었을 때부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면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 사람이 전에 데모를 하다가 최루가스인가를 많이 마셔서 기관지 천식에 걸려 고생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결혼 전 보내준 포트폴리오(사진)를 보면, 휴교령 내려서 학교 문 닫았을 때 사진이 들어있어요. 그렇게 정치적인 데에 관심이 많았어요. 저는 데모를 안 했었어요. 저는 학생회장이 선동을 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양쪽의 말을 다 들어보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하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우리 남편은 직접 행동을 했던 것이에요.


 남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귀앓이를 했었어요. 엄마가 없었는데 학교 갔다 와서 귀가 너무 아프니까 책상 밑에 쭈그려 앉아서 아픔을 참고 있었대요. 이 사람은 혼자서 아픔을 참고 견뎌내는 그런 스타일이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짐의 부담을 안 주려는 타입이죠. 유한킴벌리 사장이 되어서도 초기에 회사에서 노조와 여러 일도 있고 했는데 그때에도 전혀 집에 와서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4조 2교대제도 노조 측에서 불리할 줄 알고 반대를 했었다고 하는데, 하고 나서는 만족을 했지만 그 전에는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우리 남편은 집에서 내색을 잘 안 했어요. 언젠가 그이가 밤에 잠을 설치면서 깊은 생각을 하던 모습이 생각나요.

 

 우리 남편은 눈물이 많아요.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도 가슴 아픈 이야기, 힘들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흘려요. 지금은 고인이 된 여동생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영아빠의 여동생과 저는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고등학교 때 몸이 불편한 여동생을 학교에 바래다주러 아침마다 항상 남편이 왔었어요. 그 당시 남편은 대학생이었죠. 동생을 데려다 주느라 대학수업도 늦고 그랬어요. 여동생은 97년 즈음 돌아가셨어요. 그 때 이 사람이 많이 가슴 아파 했어요. 남편이 우는 모습을 보았는데 정말 너무 슬퍼하고 마음 아파했었어요. 여동생도 남편을 제일 좋아했어요.


 

 <가족과 함께. 여동생과 함께 있는 지영아빠>

출처 : 베스트 드레서
글쓴이 : 스트로베리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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