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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큐](일본의 만행)난징 대학살 1부-잊혀진 홀로코스트: 진실을 외치던 한 여류작가의 죽음(1)

그리운계절 2011. 6. 16. 22:09

 

* 이 게시물은 2005년 MBC 창사특집으로 방영된 3부작 다큐멘터리 "난징 대학살" 중 12월 4일에 방영된 제 1부의 캡처입니다.

* 궁서체로 표시된 부분은 다큐에서 아이리스 장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나레이션화 한 부분입니다.

 

 

 

 

 

2004년 11월 9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 클라라 카운터의 한적한 고속도로 변에서

30대의 동양계 여자가 차안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채로 발견됩니다.

 

숨진지 서너시간이 지난 후였고,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없었으며, 여자의 발밑에는 총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숨진 여자는 당시 36살이었던 중국계 미국인이자, "난징의 강간"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이리스 장이었습니다.

 

 

그녀가 집필한 "난징의 강간"은 1937년에 일본에 의해 일어난 난징 대학살의 기록을 집대성한 논픽션으로서,

영어로 된 최초의 보고서였기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책이었습니다.

 

 

 

아이리스 장은 그 책에서 단호한 어조로 난징 대학살을 다음과 같이 정의 내렸습니다.

 

어떤 역사학자는 당시 난징의 사망자들이 손을 잡는다면 난징에서 항저우까지,

약 322킬로미터나 이어질 것이라 표현한다.

또 사망자들의 시체를 포개놓는다면 74층 높이의 빌딩에 달했을 것이라고 한다.

 

사망자들의 수만 고려한다고 해도 난징 대학살은 인간 역사상 일어난 다른 끔찍한 사건들을 압도한다.

 

히틀러는 600만명, 스탈린은 4천만명을 학살했으나, 이것은 몇년에 걸쳐 일어난 것들인 반면,

난징대학살은 단 몇 주에 걸쳐 집중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사망자의 수치는 미국의 도쿄공습 때보다 많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탄 투하때보다도 많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세상은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렇게 대담하게 난징 대학살에 대해 써내려간 난징의 강간은 출간 당시 30살이었던 아이리스에게 명성을 안겨다 주었고,

이윽고 그녀는 미국내 중국인 사회를 대변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토크쇼에서 주미일본대사와의 대담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칠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그녀가 자살하였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어요.

항간에는 일본의 우익이 그녀를 독살했다는 소문도 나돌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정황상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었다고 결론내립니다.

 

 

자살하기 하루전, 자살에 사용한 구식총을 직접 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고,

그즈음 그녀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것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난징의 강간"을 출간한 이후 많은 심리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5번째 책을 준비하던 중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합니다.

 

 

 

 

아이리스 장은 원래 기자출신의 작가로, 난징의 강간은 그녀의 두번째 책이었습니다.

그녀가 난징 대학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소녀시절 그녀의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통해서였습니다.

갓난아기들조차도 셋, 넷으로 갈라버린 일본 군인의 만행을 이야기하는 부모님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찼었다고

그녀는 회고합니다.

 

 

 

 

그러나 도서관에서 어떤 자료도 찾을 수 없었던 어린 소녀의 호기심은 곧 사라졌고,

20여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아이리스 장은 난징대학살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됩니다.

 

어느날, 아이리스는 난징관련 강연회에서 대학살과 관련된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애써서 기억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끔찍한 모독이자, 인간의 사회적 진화에 반하는 이 행위는

역사에서 축소되고 사라져 버릴 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갑작스러운 공포를 느꼈다.

 

 

아이리스 장은 난징 대학살의 끔찍한 기록 사진들을 보고 큰 충격에 빠져 그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고자 마음 먹습니다.

 

 

 

1995년, 아이리스 장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국의 난징(남경)을 방문합니다.

 

 

 

 난징은 한 때 중국의 수도였습니다.

그러나, 1937년 일본군이 침략하자 난징을 수도로 정한 국민당 정부는 공방전을 벌인지 3일만에 도망치듯 철수하고

 

 

일본군은 난징을 차지하게 됩니다.

 

 

 

 

외국인 기자들은 이 소식을 앞다투어 세계로 전달하였습니다.

초반부터 그들의 눈에 띈 것은 일본군에 의해 자행되는 민간인의 학살이었습니다.

 

 

 

 

난징의 젊은이들은 가축처럼 묶여서 도시 외곽으로 끌려가 기관총세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몇달동안 도시는 시체가 산을 이루었고, 그 시체들이 썩어가는 악취가 사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곳은 난징의 서쪽으로 흐르는 양쯔강 일대였습니다.

 

 

 

아이리스 장은 이 곳을 포함하여 현장들을 취재하며 자신이 어릴적 들었던 이야기들의 실체를 확인합니다.

 

 

 

당시 수도를 지키겠다며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중국인 장군마저 점령되기 하루 전 도시를 빠져나가면서,

지휘군을 잃은 중국군은 물론 민간인들까지 모두 양쯔강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위험하긴 했지만 그 곳만이 유일한 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곳에서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난징 대학살은 이들이 죽음을 맞이한 방식의 참혹함때문이라도 기억되어야 한다.

중국인들은 총검술 연습대상으로 이용되었을 뿐 아니라,

2만에서 8만에 이르는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고,

산채로 매장하기, 신체장기 도려내기, 산채로 불태우기 등 악마적인 행위들이 버젓이 저질러졌다.

나치조차도 난징대학살을 야수의 행위라고 이름붙일 정도였다.

 

 

 

 

아이리스 장은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희생자들과,

난징 대학살을 연구하는 연구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녀는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고 난징의 고난을 고통스러워했으며 매우 격분했다고 합니다.

 

 

아이리스 장은 난징 대학살을 아시아의 홀로코스트이며 인류사에 있어서 두번째의 홀로코스트로 규정합니다.

 

 

(2)에서 계속됩니다. 한 게시물로 쓰려고 했는데 길어져서 2개로 나누려구요..;;

 

출처 : 소울드레서 (SoulDresser)
글쓴이 : 노세노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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