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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큐] 난징 대학살 2부-진실게임: "난징의 강간"에 대한 일본의 억지 주장(1)

그리운계절 2011. 6. 17. 09:15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486071  난징 대학살 1부-잊혀진 홀로코스트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486084  난징 대학살 1부-잊혀진 홀로코스트

 

* 이 게시물은 2005년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난징 대학살" 중 12월 11일 방영된 제2부 진실게임의 캡쳐입니다.

* 일부 사진에 잔인한 장면이 담겨져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난징의 강간을 쓴 이후, 심리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아이리스 장은 결국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그녀는 진실을 알리기 위한 투사였을지 모르지만, 스스로를 지키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진 책, 난징의 강간.

 

과연 일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난징의 강간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본의 진실 공방은

난징 대학살 문제에 대한 일본의 역사인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난징의 강간의 일본어 판은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지난 99년 일본어로 번역까지 마친 상태에서 번역판 출간이 수포로 돌아갔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일본측 출판사가 책 내용을 수정하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일본 우익들의 압력이 있었다는 것이 아이리스 장 측의 주장입니다.

 

 

 

 

당시 출판사의 자문 역할을 맡았던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엇이 진실이든간에,

난징의 강간은 일본에서는 출간되기도 전에 진통부터 겪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책은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었는데,

제일 처음 문제가 된 것은 책에서 사용된 사진에서 발견된 오류였습니다.

 

 

 

위의 사진은 여자들을 데려가는 일본군의 사진으로,

난징의 강간에서는 이 사진을 인용하며 저 여인들의 대부분이 윤간당한 후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설명을 달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것을 일본군이 연출한 사진으로 추측하며,

그 근거로 사진 속 중국인들이 웃고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일본군이 학살했다는 중국인 사진에서도

그 장소가 난징이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이를 책의 오류라고 지적했습니다.

 

 

 

난징 교외로 이송된 후 학살되었다는 설명이 붙은 사진도

국민당 정부 시절 강제 징집 사건으로 대학살과는 무관하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된 사진들은 이미 세상에 먼저 드러났던 사진들이었고,

 

 

그녀는 그것들을 재인용한 것 뿐이었으며, 사진의 출처도 명확하게 밝혀놓았습니다.

말하자면 오류였다 해도 앞서의 오류를 재인용한 것이지, 그녀의 잘못이라 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이러한 오류들이 문제가 되자, 일본 출판사는 당초의 계획을 바꿔

원작을 토대로 옮긴 번역판과 원작의 비판서를 동시에 출판하겠다는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을 합니다.

 

 비판서의 중심내용은 원작에서 문제가 된 부분을 비판하고 그 배경과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난징의 강간"은 일본에서 출간되지 않았던 겁니다.

 

 

 

 

 

 

아이리스 장은 일본 극우파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였습니다.

그녀가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진실은 정작 가해 당사국인 일본에서 여전히 금기의 영역이었으니까요.

 

 

 

난징 대학살은 1937년 중국 침략에 나선 일본군이 상하이 점령에 이어

12월 13일 당시 중국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하며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일본군은 처음 6~7주 동안 난징 일대에서 중국군인과 포로, 민간인을 대량 학살하였습니다.

무차별 살육과 생매장, 태워죽이는 등의 야만적이고 잔혹한 학살이 자행되었으며,

강간과 약탈, 방화도 횡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이 사건은 일본 침략주의가 낳은 결과물로, 30만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주장합니다.

 

그럼 당사국인 일본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일본의 입장은 세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난징 대학살은 인정하는 파, 중도파, 부정하는 파..이렇게 말입니다.

 

 

 

부정파중 대표인물인 히가시나카노 교수는 위와 같은 책을 집필하며,

그 책에서 단 한장의 사진도 난징 대학살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인정파들은 그들의 논리가 너무 빈약하고 단순하다고 비판합니다.

 

 

 

예를 들어 부정파들은 가죽 신발을 신은 사진을 가리켜

일본군들은 당시 가죽신발을 신지 않았기 때문에 조작된 사진이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난징을 점령한 모습을 촬영한 일본의 공식 기록에서

일본군은 가죽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살을 저지른 자들이 일본군으로 위장한 중국군이라는 주장도 펼칩니다.

하지만 그 역시 논리가 빈약했죠.

 

 

 

여성들을 강간하는 사진도 중국군이 변장하여 찍은, 이른바 옐로우 사진이라고 주장합니다.

 

 

시신이 쌓여있는 양쯔강변의 사진도

그 시체들은 모두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거나,

일본군의 소행으로 보이게 하려고 중국군이 죽여놓고 사진을 찍은 것이라 주장합니다.

 

하지만 난징 학살의 증거가 되는 사진들을 찍어서 사진집을 펼쳐낸 일본군인이 있었습니다.

 

(2)에서 계속됩니다.

 

 

 

 

출처 : 소울드레서 (SoulDresser)
글쓴이 : 노세노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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